겨울 한 철 중국집에서 대목장사가 있다면 단연 노인정 배달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야 초등학교 졸업식이면 아이를 대동해 온 가족이 짜장면1) 집으로 모여 북새통을 이루었었다. 지금은 시골 초등학교는 아예 폐교되어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기회란 노란차로 본교에서 운영하는 스쿨버스를 통해 잠깐 스쳐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시절 따라 이렇게 풍경이 바뀌자 노인정 매출은 배달업종의 식당으로선 겨울나기에 좋은 짭짤한 수입처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인정을 청소하는 날이거나 도시로 나가 잘사는 자녀들이 어르신들이랑 식사나 한 끼 하시라고 봉투를 전해주든가 아니면 어느 분의 생신이라든가 하는 날이면 만만한 것이 중국집 배달이다. 그때마다 서로가 요긴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사이였는데 이번 겨울은 정말 한 건도 주문을 받지 못하고 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의 집합금지 명령에 따라 모든 노인정이 폐쇄되고 썰렁한 정적만이 감도는 건물에 태극기는 왜 그리 요란하게 펄럭이는지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고 2월 끝자락 즈음 하우스에서 배달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짜장면을 들고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벌써 고추 모종이 파릇파릇하니 내 손가락 크기만큼 자라 있었고, 다른 곳에선 감자 씨눈을 도려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땅이 포슬포슬 숨을 쉬기 시작하면 농부의 근육이 꿈틀거린다는 말처럼 이제 곧 저 파릇한 고추 모종이 밭으로 나가는 날, 너만 나가랴 나도 철가방 들고 농부님들 허기진 뱃속 채우러 신나게 달려나간다.
씨앗 뿌릴 때부터 늦가을 추수가 끝날 때까지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에 농산물 가격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려 나갈 때면 주머니서 꼬깃꼬깃 접어놓은 돈을 받는 기분이 마치 벼룩의 간을 내어먹는 기분이 들어 짜장값 대신 밭에 있는 농작물과 바꿔오곤 하는데 계절 따라 옥수수, 밤, 생 강, 땅콩, 마늘 등 종류도 다양하다. 농산물가격이 좋을 땐 돈을 척척 세어 주는 농부님 어깨가 어찌나 당당하신지 받아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분들 덕에 목계반점이 24년을 유지하고 또 여기서 아이들을 모두 키워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코로나로 장사가 덜 되어서 힘들지 않냐고 오히려 위로해 주시는 손님들 덕분에 ‘그래도 괜찮아요 견딜만 해요’라고 답한다.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거야 무조건 달려갈 거야’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봄이 왔으니까 말이다.
정호승님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에 수록된 ‘짜장면을 먹으며’의 시 한 부분이 위로를 해준다.
내 한 개 소독저로 부러질지라도
비 젖어 꺼진 등불 흔들리는 이 세상
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비 젖어 꺼진 등불 흔들리는 이 세상이지만 많이도 흔들려 봤고 어둠 속에서도 걸어봤기에 두렵지 않다. 제깟 코로나쯤 내가 눈 깜짝이나 할까보냐. 봄이 여지없이 찾아오듯 내 삶의 희망도 피어난다.
들판이 푸르러지고 곡식이 영글어 갈 때 쯤이면 이 어둠도 지나가리. 기쁨을 섞고 정성을 섞어 힘이 되는 짜장면을 만들어 밭으로 나아가야겠다.
부르릉 부르릉!
1) 지금은 짜장면도 표준말이 되었다 이유인즉 짜장면만 표준말이라면 짬뽕도 잠봉이라고 해야 한다는 이론에서였다. 누가 짬뽕을 잠봉이라고 부르겠는가! 내가 쓰는 한글파일은 예전 거라서 짜장면이라고 쓰면 붉은 밑줄이 그어진다
그래도 괜찮아! 글 _ 박애다 (애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25년간 중국음식점 '목계반점'을 운영해 오고 있다.
삽화 _ 김 사무엘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