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군에 있는 거창고등학교엔 ‘직업 선택을 위한 십계명’이란 것이 있습니다. 상식을 깰 뿐 아니라 납득하기조차 힘든 내용이어서 한참을 다시 보게 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월급이 적은 쪽으로 가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선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선택하라 (중략)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위 십계명은 이 학교 3대 교장이며, 거창고의 초석을 놓은 전영창 선생의 설교 제목을 따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수십년 직장생활을 하며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었다고 자부하는 저도 솔직히 저 십계명을 그냥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엔 아무래도 편치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 달라서 그렇습니다. 무언가 기독교인이었던 작자(作者)의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지난해 대림1주부터 올 11월 27일까지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의 해’로 정했습니다. 희년 주제가 ‘당신이 천주교인이오?’입니다. 이 물음이 고스란히 제 가슴에 와 박힙니다. 거창고의 십계명이 떠올랐습니다. 물음에 대한 답은 저 십계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상식과 관례의 틀을 깨는 것, 가치의 전도(顚倒), 성경의 ‘첫째와 꼴찌’에 관한 비유가 ‘거창고 십계명’을 이해하기 위한 힌트가 될까요.
세상의 화복(華福)을 쫓기보다 아빠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랐던 예수님의 삶은 고난과 희생이 요구되는 십자가의 길이지만 영원한 생명을 잉태한 구원의 길입니다. 답은 예수님의 삶에 있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아니라 비움과 낮춤, 내어줌이 그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창조의 이유이고 우리 삶의 목적이니까요. 예수님은 “누구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될 때 예수의 부활도 나의 부활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오?’
오늘 여기서,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입니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가톨릭신문에서 편집국장과 취재부장ㆍ편집부장을 역임했다. 최근 초종교적 접근, 특히 불교ㆍ도가(道家) 사상과 그리스도교의 접점을 찾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