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via crucis)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형상화한 조각이나 성화를 하나 하나 지나가면서 예수의 고통을 묵상하는 기도입니다.
구체적으로 십자가의 길 14처(處, Station)는 ‘예수 사형선고 받으심 ’‘예수 십자가 지심 ’‘예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 등 실화들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 깊이 빠져 들어가다 보면 예수 고통의 신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의 유래는 초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녀 실비아(380년경)는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 산까지의 거리(약 7km)를 실제로 걸으면서 기도드렸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후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는 오늘날의 형태는 15세기 이후에야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도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는데 1686년 교황 인노첸시오 11세가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 설립을 허용하고 대사(大赦)를 부여했으며,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수도회 이외의 모든 성당에도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처의 숫자가 14처로 고정된 것도 이때부터 입니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신심은 수도회들에 의해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길 기도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십자가의 길은 그 자체 안에 역설을 안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자체는 배신, 고통, 실패지만 한편으로는 봉헌, 사랑을 드러내는 표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모순의 십자가의 길에는 교회의 존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실 교회의 존재와 일치 및 세례의 구원 효력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처형되신 사실에서 기인합니다.(1코린 1,13 참조)
또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4-25)는 말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모든 신앙인들에게는 십자가 고통에의 동참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고통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기도로 십자가의 길을 꼽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사랑에의 일치를 효과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길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예수의 참혹한 죽음을 더 깊이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의 인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기도가 마찬가지지만 특히 십자가의 길은 기도서에 의지한 단순한 암송 기도로는 그 깊은 의미에 도달하기 힘듭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기도할 때 기존의 기도서와 책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체험했던 모든 어려움을 그리스도의 고통의 의미 안에서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일반 죄인들에게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시고자 하신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자! 이제 그 길을 걸으려 합니다. 예수님이 2000년전 걸었던 그 십자가의 길을 단순히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과 연결시키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의 구원과 이웃의 구원을 위해 걷는, 승화된 십자가의 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삽화 _ 김 사무엘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