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러시아와의 접촉은 없었지만 평화 위한 메시지 간접적으로 전달... 미사에 중국 신자 약 200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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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스텝 아레나 경기장.
프란치스코 교황은 중앙아시아의 ‘작은 양 떼’인 몽골 신자들과 역사적 미사를 봉헌한 후 두 성직자를 중앙 제대로 불러냈다. 홍콩교구장 초우사오얀 주교(9월 30일 추기경 서임 예정)와 전 교구장 존 통 혼 추기경이다. 교황은 두 지도자를 양옆에 세웠다. 그리고 미소 띤 얼굴로 국경 너머 중국인들에게 인사했다.
“고귀한 중국 국민들께 인사합니다. 저는 모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항상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신자들에게 당부합니다. 모든 이를 위해 좋은(good) 그리스도인이 되고 좋은 시민이 되십시오.”
가까운 몽골에서 중국 향해 띄운 메시지
이 발언과 장면은 교황이 몽골에서 중국에 띄우는 메시지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교황이 방문한 국가들 가운데 몽골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장 가깝다. 두 나라는 국경을 4800㎞ 접한다. 러시아와도 지리적,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다.
중국과 러시아는 교황이 여러 차례 방문 의지를 피력한 사회주의 국가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평화 회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모스크바로 날아가 푸틴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몽골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접촉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교황이 울란바토르에서 중국 정부 관계자를 비공개로 만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몽골 도착 전 모스크바 공항에 내려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 키릴 총대주교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 섞인 전망일뿐 몽골 방문 중에 성사된 접촉은 없었다. 그럼에도 교황은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두 나라에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 신자들도 만났다. 스텝 아레나 미사에는 홍콩과 마카오, 대만에서 중국 신자 약 200명이 참여했다. 법적 제재를 각오하고 여행을 감행한 본토 지하교회 신자도 섞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신자들은 교황 환영식장에서 오성기를 열광적으로 흔들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중국인 남성은 비록 참여자 수는 많지 않지만, 모두 ‘같은 교회’로서 여기에 모였다고 말했다.
교황은 중국 신자들에게 “좋은 그리스도인인 동시에 좋은 시민이 되라”고 당부했다. 이는 “조국을 사랑하고 종교를 사랑해야 한다”는 중국 정부 입장과 차이가 있다. 교황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그리스도인’과 ‘시민’ 순서를 바꿔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국에 정통한 교황청 외방선교회(PIME) 지나이 크리벨러 신부는 “자유로울 때는 좋은 그리스도인과 좋은 시민이 모순되지 않는다”며 “이제는 중국 정부가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교황청 국무원 총리)의 영구적 대화 형태 요구에 구체적 조치를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파롤린 추기경 요구는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이 당장 어렵다면 지속적 대화를 위해 베이징에 교황청 상주 대표부라도 설치돼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이 응답할 차례
베이징의 반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황은 중국 영공을 통과하는 기내에서 시진핑 국가 주석에게 “국가의 안녕을 위한 기도를 약속하며, 일치와 평화를 위한 하느님 축복을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시 주석은 “교황청과의 건설적인 대화에 참여하고 이해를 증진하며 상호 신뢰를 강화하고자 계속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답신을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보내왔다.
몽골에서 행한 연설에도 중국과 러시아를 염두에 둔 듯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교황은 2일 “교회는 정치적 의제를 추진하지 않고, 모든 이의 선익을 증진할 수 있는 하느님 은총의 겸손한 권능과 자비와 진리의 말씀에만 의지한다”며 “정부와 세속기관은 교회의 복음화 사업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튿날 다른 종교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각국 지도자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하는 길을 택한다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분쟁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기내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도 바티칸과 중국은 서로 “매우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인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문화와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외세에 의존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