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국가 베트남에 교황청 상주 대표부가 설치된다. 교황청과 베트남 정부는 최근 공동 성명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바티칸에서 만나 하노이에 상주 대표부를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베트남은 중국과 함께 아시아의 대표적 사회주의 국가다. 두 국가와 접촉하면서 ‘수교 단절’ 상태인 관계를 개선해 나가고 있는 바티칸이 베트남에서 먼저 외교적 진전을 이룬 셈이다. 이번 합의는 앞으로 바티칸-중국의 관계 증진과 외교 정상화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공산 정부의 교회 탄압
북베트남 공산 정권은 1975년 사이공을 함락하고 통일 정부를 수립한 후 바티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공산 정권은 분단 시절 남베트남이 친가톨릭적이었던 데다, 가톨릭은 과거 프랑스 식민 세력의 동조자였다는 이유를 들어 교회를 엄격히 통제하고 탄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대 정적이었던 고딘디엠 베트남공화국 초대 총통(1963년 사망)은 독실한 가톨릭 집안 출신으로 친가톨릭 정책을 폈다. 사이공 함락 당시 그의 형은 사이공대교구(현 호치민대교구) 교구장 주교였다. 남베트남 교회는 반공의 보루를 자처했다.
이 때문에 통일 정부는 교회를 적대시했다. 학교와 병원 등 가톨릭 시설을 모두 몰수해 국유화했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물론 신학생과 사제 수도 통제했다. 사제직을 희망하는 젊은이는 정부 종교성이 실시하는 사상 검증부터 통과해야 했다. 박해받는 가톨릭의 상징적 인물이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희망의 길」 저자로 잘 알려진 응웬 반 투안 추기경(2002년 선종)이다. 사이공 함락 7일 전에 사이공대교구 부주교로 임명된 그는 1975년부터 1988년까지 9년간의 독방생활을 포함해 모두 13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상호 이해와 존중이 바탕
베트남 정부가 바티칸의 대화 제의에 응하면서 통제의 고삐를 늦추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 당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로제 에체가라이 추기경이 공산화 이후 처음 베트남을 공식 방문했다. 그때부터 교황청 대표단이 매년 베트남을 방문해 정부 관리들과 교회 공동체를 만나는 관행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정부가 교황청을 제쳐놓고 주교를 일방적으로 임명하던 것을 ‘상호 합의’ 방식으로 바꿔나갔다. 2009년에는 국가주석이 바티칸을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만나기도 했다. 양측이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상호 이해와 존중을 확인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앞으로 상주 대표부가 원만하게 운영되면 공식 외교 관계 수립을 의미하는 대사관 설치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이번 합의는 진지한 대화와 존중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바티칸 뉴스」 인터뷰에서 “상주 대표부는 관계를 더욱 개선하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미래를 위해서는 성급히 목표에 도달할 게 아니라 가식 없이 서로 만나길 원하고 꾸준히 여정에 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아 가톨릭 통신(UCAN)은 “베트남 신자들은 이 협정이 더 많은 종교적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가에 봉사하는 사회 활동이란 공산화 이전에 가톨릭교회가 활발하게 했던 교육ㆍ의료ㆍ사회복지 등 사회사목 활동의 재개를 뜻한다.
베트남 정부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에는 가톨릭 신자 700만 명, 본당 3000곳, 신학교 11개, 사제 8000명, 주교 41명이 있다.
중국도 베트남식 관계 개선 기대
이 같은 베트남식 모델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바티칸은 이미 2018년 중국 정부와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를 도출할 때 ‘상호 합의’라는 베트남식 모델을 따랐다.
베트남에 비하면 중국과의 관계 개선 속도는 매우 더디다. 어렵사리 이끌어낸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합의’도 불안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중국은 합의를 어기고 주교를 일방적으로 임명해 바티칸이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시한 바 있다. 최근에도 교황청과 아무런 협의 없이 장쑤성 하이먼교구 선빈 주교를 상하이교구장 주교로 전보(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