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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 이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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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한으로 돌아갔다. 송환은 6·29공동선언에 따른 조치였다. 나는 그 중 김석형 선생을 안다. 그의 구술 생애사 작업을 했었고 후에 그 기록을 책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선인, 2001)로 펴냈다.

당시 마음이 복잡했다. 이렇게 삶의 기록을 남길 기회를 갖기 어려웠을 다른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에서 북으로 돌아가는 김 선생처럼, 북에서 남으로 돌아와야 하는 많은 이들이 그곳에 있을 터이다. 그래서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런 꿈을 꿨다. 내가 김석형 선생의 기록을 채록한 것처럼, 만일 북한의 한 젊은이가 그곳에 살고 있는 남한 출신 인사의 -그가 납북자이든, 국군포로이든, 남한 공작원이든 간에- 기록을 채록한 것이 있다면, 꼭 맞는 짝은 아니겠지만, 균형을 이루며 분단 시대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 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꿈을.”

20년이 훨씬 지나서, 이 책을 만났다.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깊은바다돌고래, 2023)에는 50여 년 동안 북한에 억류돼 살다가 탈북해 고향에 돌아온 국군포로 9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는 휴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송환되지 못하고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가 8만 명이나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 대부분이 탄광에서 일했고, 자손들은 차별받았고, 한국 정부는 이들을 찾지 않았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비전향 장기수가 평양에서 대대적으로 환영받을 때, 이들이 느꼈던 실망과 배신감에 대해서도 가늠하지 못했다. 개개인의 사연은 기가 막히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는 인민군이었다가 나중에 국군이 되고 결국 국군 포로로 평생을 탄광에서 보낸 이도 있고, 휴전협정 체결 사흘 전에 포로가 된 이도 있다.

작가를 만났다. 이혜민(소화 데레사) 작가는 10년 동안 이 일에 매달린 이유를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폭로하기 위해 귀환 국군 포로들을 만난 것이 아니다…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아닌 한 인간으로서 전쟁 피해자들의 삶을 듣고 기록했을 뿐이다…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국군포로의 어머니들을 기억하며 이 책을 천천히 읽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우리 땅에는 들어야 할, 기록돼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고통을 겪은 이들의 가슴에 깊이 남은 분단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지는 않을까? 이혜민 자매와 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주님이 인도해 주시길 함께 기도했다.
이향규 테오도라(뉴몰든 한글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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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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