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우리 학교 공대 건축학과의 홍일점 여학생이었다. 유난히 검고 초롱거리는 눈이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매력적인 여학생이었다. 당시 막 결성되었던 총학생회의 간부였고 노래패의 리더였으며 이미 감옥까지 다녀온 우리들의 전사였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나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러는 사이 나는 작가가 되었고 그녀는 건축사무실에 들어가 일을 배운다고 했었던 것이 마지막 안부였을 것이다.
어느 날 지방에 강연을 갔는데 강연이 끝나고 누군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거의 20년의 세월이 지나갔지만 내가 그녀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자면 누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모든 빛이 꺼진 창문같이 어두웠다. 마주 앉아 짧게 차를 마시는데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건축사무소에 다니며 아이를 낳았다고, 아이가 장애인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경력을 포기했다고 말이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는 담담했는데 나는 울고 있었다. 기차 시간이 다가와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아쉬워하는 그녀의 손을 붙들고 내가 말했다.
“방법이 없어, 친구야, 너 하느님 믿어. 그것만이 길이야”
희미한 슬픔에 잠긴 그녀의 눈동자에 번쩍하고 빛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다. 헤겔을 이야기하고 세계정세를 논하고 경제학의 문제를 함께 풀던 옛 친구가, 게다가 작가까지 된 친구가 하는 말이 알렐루야라니. 밑도 끝도 없이.
기차를 타고 오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여자의 인생이라는 게 무엇인가 하는 해묵은 아픔도 느껴졌고 멋진 위로 대신 그런 말을 꺼낸 내 자신도 한심했다. 난데없이 얼마나 놀랐을까 싶어서였다.
우리는 그 후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긴 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녀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이가 자라, 아이 때문에, 아이의 덕택으로 아이와 함께 세례를 받게 되었어. 네가 그때 했던 말 책임져. 그러니 와서 내 대모가 되어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때의 감동을 기억한다.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그 무렵 참례한 미사에선 이런 복음이 낭독되었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6-27)
이 복음은 또 언제 새로 생겨난 것일까 싶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이랑 덤불에 떨어진 씨앗 이야기 말고 예수님은 언제 이런 이야기도 해 놓으셨나 말이다. 미사 시간에 눈물이 났다. 너무 감사해서.
안젤라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눈도 초롱했다. 역시 그녀는 서울대교구 장애인 신앙교육부 자모회 회장도 맡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그녀 같았다. 그러니 하늘나라는 얼마나 쉬운가. 우리는 그저 씨앗을, 얼결에 그러든 일부러 그러든 뿌리면 되니까.
공지영 마리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