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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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 _ 로마의 성당들

베드로 대성당 (1) 베드로 대성당이 베드로 대성당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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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가져보는 것, 때로는 재미있다. 베드로 대성당은 왜 베드로 대성당일까. 베드로는 왜 베드로일까. 교황은 왜 베드로 대성당에서 살고 있을까.

베드로 대성당에 발을 들여놓기에 앞서, 로마의 엄지손가락 대성당에 왜 굳이 ‘베드로’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추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예수는 베드로를 베드로로 부르지 않았다. 성경에 따르면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 바르요나’였다.(마태 16,17 참조) 이는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이다. 시몬 너는 아느냐. 너와 동명이인(同名異人) 중에 그 유명한 베드로가 있다는 것을!

이 멋있는 이름을 바꾼 장본인이 예수다. 예수는 시몬에게 ‘반석’ ‘바위’라는 뜻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마르 3,16; 루카 6,14 참조) 그런데 예수는 아람어를 사용했다. 아람어로 반석, 바위를 뜻하는 단어는 ‘케파’다. 따라서 예수는 베드로를 ‘케파’라고 불렀다. 자! 여기까지가 예수와 베드로 생전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소천해서 천국문을 지키기 시작한 이후, 베드로의 이름이 요상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원래는 시몬이었고, 나중에는 케파로 개명했다. 그런데 이 이름이 그리스어 신약성경으로 번역되면서 ‘페트라’(πετρα)로 바뀐다. 왜? 바위, 반석(케파)을 뜻하는 그리스 말이 페트라이기 때문이다. 이 페트라가 또 라틴어로 옮겨지면서 역시 바위를 뜻하는 ‘페트루스’(Petrus)가 된다. 이 페트루스가 각 나라말로 번역되면서 베드로 이름은 그야말로 작명의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영어로는 피터(Peter)이고, 독일어로는 페터(Pete), 스페인어로는 페드로(Pedro), 이탈리아어로는 피에로(Piero), 불어로는 피에르(Pierre), 러시아어로는 표트르(Пётр)가 됐다. 참고로 중국어로 베드로는 피득(彼得, 그를 얻다)이라 쓰고, 삐더(bide)라고 발음한다. 영어 피터를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다. 반면 대만에서는 베드로를 반석(盤石)이라고 쓰고, 판스(panshi)라고 발음한다.
 
베드로 대성당 전경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예수를 만나기 전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는 어부였다. 베드로가 서양 어부의 대명사라면, 동양에는 강태공(姜太公)이 있다. 강태공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60년 넘게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그 이후 60년 동안 대업을 이룰 운명이었다. 어쩔 수 없이 60년 동안은 시간을 보내며 때를 기다려야 했다. 이때 선택한 것은 낚시였다. 그는 그렇게 낚시를 통해 세월을 낚았다. 낚시로 소일하던 강태공은 훗날 주나라 문왕을 만났고, 주나라 건국(BC 1046)의 일등공신이 된다. 이처럼 강태공에게 낚시는 시간 때우기용 소일거리였다. 물고기가 잡혀도 그만, 잡히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랐다. 그에게 낚시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실제로 그는 동생 안드레아와 한 집에 살아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마르 1,29 참조) 장모를 비롯해 부양할 가족도 많았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날이면, 다음 날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였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중요했다. 그 가난했던 어부 베드로에게 어느 날, 인자(人子)가 찾아온다.(루카 5,4-11 참조)

그 날, 근육질의 베테랑 어부 베드로는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 때 샌님처럼 보이는 한 사람, 예수가 다가와 말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베드로는 이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수의 지시는 상식에 어긋나는 말이었다. 낮에는 고기가 깊은 곳에 있지 않고, 먹이를 찾아 얕은 곳으로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의 말에서 강한 끌림을 느꼈다. 거역하기 힘든 음성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혼자 힘으로는 그물을 올릴 수 없어,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도와 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물고기를 건져 올리고 나니, 두 배에 가득 찼다. 그 무게 때문에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절망의 순간에 예수는 풍요를 선물했다. 풍요를 체험한 베드로는 이제 예수의 풍요로움을 따라나선다.

그 풍요로움의 길에서 베드로는 사도들 중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했다. 성경에서 그의 이름은 사도 명단 중 언제나 첫 머리에 나타난다.(마태 10,2) 또한 그는 주님으로부터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주라는 부탁을 받았고(루카 22,32)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7;사도 15,7)는 말도 들었다. 베드로는 이러한 스승의 신뢰에 열정으로 응답한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를 떠날 때도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라며 믿음을 고백했다. 예수께서 재판소에 끌려갈 때 밤새도록 그 뒤를 따라간(마르 14,54) 사람도, 부활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먼저 무덤으로 달려간 (요한 20,3) 이도, 부활한 예수를 뵙고자 그냥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간(요한 21,7) 이도 그였다.
 
베드로 대성당 내 베드로 청동상

그러나 베드로는 인간적인 약점도 많았다. 고통당하는 메시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사탄아 물러가거라”(마태 16,23)고 질책을 들었으며, 의심 때문에 물에 빠지는가 하면(마태 14,30) 예수가 고통 중에 기도하는데 한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고 졸았다.(마르 14,32) 또 “주님과 함께라면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고 했지만(루카 22,33) 정작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다.(마태 26,74)

그런데 베드로가 이러한 나약한 모습으로 생을 마쳤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로마의 첫머리 대성당이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요한 대성당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 부활과 승천, 성령을 체험한 후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단 한 번의 설교로 3000명을 회개시키는가 하면(사도 2,41), 지체장애인을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사도 3,8) 이후 베드로는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하는(갈라 2,11) 등 당시 전 세계를 종횡무진 다니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했다.

이렇게 극적인 삶을 살았던 베드로에게 극적인 마지막이 찾아온다. 소위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로 불리는 사건이 그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사건 이후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한다.

자!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베드로의 유해는 어디에 안장되었을까. 베드로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베드로의 삶과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장황하게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0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유해가 ‘현재’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에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글 _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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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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