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의 한 빌라에서 4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한참 만에 발견된 부패한 시신 옆에는 의식을 잃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아이는 병원에서 깨어나자마자 울먹이며 엄마를 찾았다고 하지요. 발견이 늦었으면 아이의 운명 또한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여성의 사인은 동맥경화였습니다. 하지만 여성과 아이의 운명을 가른 것은 생활고, 즉 가난이었습니다.
여성의 집에는 전기요금 등을 포함한 각종 공과금의 납부독촉 고지서와 생활쓰레기가 쌓여있었습니다. 여성은 이웃들과 왕래가 거의 없었고 최근에는 특별한 벌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성의 가정은 지난 7월, 공과금이 3개월 연체되면 지정되는 ‘위기가구’로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공동체는 비극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번 비극은 지난해, 위기가구로 인지했으나 죽음을 막지 못했던 ‘수원 세 모녀 사건’을 닮았습니다. 이번에도 제도에 구멍이 있었고 지자체의 손길은 한 발 늦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철저한 대책을 지시했지만 우리 사회 약자에 대한 비극은 반복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다른 곳에도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7천여 명의 국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자살자는 작년보다 561명이 늘었습니다.
2003년부터 대한민국은 줄곧 자살률 세계 1위 국가입니다. 하루에 36명, 매년 1만3000명 이상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자살자가 더 많습니다. 1990년부터 따지면 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이 16 감소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반대로 230 폭등했습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우리 공동체 약자에 대한 비극이 펼쳐지고 있지만 정부는 오히려 약자에 대한 안전망을 걷어치우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국고보조사업 연장평가 보고서’를 보면 우리 사회의 약자인 노인, 아동, 청소년, 장애인 예산이 집중 삭감되었습니다. 노인요양시설이나 어린이집 확충,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등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습니다. 장애인 복지시설의 기능보강 사업도 축소되었습니다. 일명 부자감세 등의 이유로 발생한 세수부족을 복지지출 축소로 메꾸고 있는 것입니다. 재정을 건전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줄이지 말아야 예산도 있습니다. 경기침체로 가득이나 힘든 이들을 더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우리 공동체를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사회’라고 부릅니다. 중남미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OECD국가 중 가장 길다는 근로시간. 경제위기를 핑계로 점점 쉬어지고 있는 해고. 이제는 흉내마저도 내지 않는 사회안전망. 모두가 단 한 번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무한 경쟁의 우리 공동체의 자화상입니다. 그래서 밀려나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공동체에 팽배합니다. 그리고 패자부활전 없이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각자도생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이 나만 살아남아야 하는 무한 자유 경쟁이 아닌 서로가 함께하는 사랑과 연대의 공동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