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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단상] 하느님이 계셔서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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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을 줄여서 부르는 말)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수많은 말 중에 내가 가장 아프게 생각하는 말이다. 소위 말해 명문대 석사 학위를 받은 지 정확하게 100일 만에 결혼을 했다. 군인 아내로 18년을 살면서 12번 이사를 다녔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당연히 경제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이를 먹었고, 경력 단절은 18년이 되었다. 늘 마음 한편, 세상에 ‘엄마, 아내’가 아닌 내 이름 ‘이소연’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계기가 생겨 18년 만에 적극적으로 구직을 시작했다. 내 또래 엄마들은 어린이집 주방, 학교 급식실에서 아이들에게 뜨끈한 밥을 해먹이는 일들을 시작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요리를 잘 하지도 못하고, 손이 빠르지도 못하며, 무엇보다도 주방일을 너무 너무 하기 싫어했다.

그러던 차에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책을 만드는 회사라고 했다. 대표 면접을 길게 하고, 이틀 뒤 합격했으니 2주 뒤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나도 경력 단절을 끝마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출근을 3일 앞두고 다시 연락이 왔다. 현재 직원들과 나의 나이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직급상 상사일 수도 있고, 함께 일할 사람들이 MZ 세대라 직원들 우려가 많다고. 책을 만드는 일의 특성상 외주로 일을 할 수 있으니 외주로 일을 좀 하면서 감각도 다시 깨우고 직원들과 소통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지금 찬밥 뜨거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니, 그러겠다고 했다.

외주 일을 제안 받은 지 일주일 뒤, 첫 원고 청탁이 왔다. 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인터뷰하고 원고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원고를 작성해서 보내고 다시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나이가 끝내 극복되지 못했나보다 하고 체념하고 있을 때가 돼서야 연락이 왔다. 출근하시라고. 그렇게 내 나이 마흔 다섯, 경력 단절 18년 만에 ‘이소연 과장’이라고 박힌 명함을 받았다. 이 모든 일이, 어느 순간, 스르륵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늘 곁에 계셔서 든든했던 ‘하느님’이.

사실 구직을 하게 된 사연이 있다. 글로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내 인생에 꽤나 크고 깊은 웅덩이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기 역시나 언제나처럼 또 하느님께 대고 갖은 투정과 원망을 쏟았다.

경력 단절을 끝내고 일을 하게 되면서, 그제야 다시 ‘하느님’이 생각났다. 웅덩이 같았던 시간이 없었다면, 내 이름으로 세상에 나가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어려움들이, 왜 내게 온 것인지 나는 모른다. 알면 그게 어디 어려움일까. 하지만 하느님은 분명 그 어려움들을 이겨낼 나의 노력과 그 고단함과 그 상처를 모른 척하지 않으신다. 그 와중에, 내가 당신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까지 살짝 고백한다면, 내 고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길로 나를 이끌어 주신다.

내 이름 ‘이소연’이 반짝이게 박힌 명함을 받아 들고서야 비로소 다시 한번 씨익 웃는다. 그리고 하느님께 속삭인다. “이러실 줄 알고 있었어요. 제가 늘 딱 하나만 잡고 간다고 했잖아요. 분명 나에게 가장 좋은 행복을 주실 거라는 거요.”

그래서 나는 늘 ‘하느님이 계셔서 참 좋다.’
이소연 체칠리아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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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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