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이 1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졌다. 한국인 첫 사제이자, 한국 교회 사제들의 맏이인 김대건 신부가 1846년 서울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한 지 177년 만에 보편 교회의 중심인 바티칸에 성상으로 우뚝 선 것이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 동양의 성인상이 세워진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지금까지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에는 남녀 수도회를 창설한 성인, 성녀가 주로 모셔졌지만, 이번에 김대건 신부 성상이 설치되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이날 성상 축복식은 성 베드로 대성전 수석 사제인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 주례로 거행됐다.
감베티 추기경은 축복식 강론에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이게 되어 정말 행복하고 기쁘다”며 “김대건 신부의 성상으로 성 베드로 대성전이 훨씬 아름다워졌다”고 감탄했다. 이어 “대성전에 유럽 수도회 창설자들의 성상뿐만 아니라, 김대건 신부 성상이 세워졌다는 것은 동서양의 모든 지역 교회가 더불어 함께 걸어가길 바라는 희망의 표지”라며 “김대건 신부 성상을 시작으로 이제 각 민족과 나라를 대표하는 성인들의 성상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을 시작으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과 한국 교회 대표로 함께 자리한 염수정 추기경이 성상에 잇따라 성수를 뿌리며 축성했다.
김대건 신부 성상은 성 베드로 대성전 우측 시스티나 경당이 마주 보는 사이 길목 외벽 4m 높이에 세워졌다. 순례객들이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감상하고 나와 쿠폴라(지붕)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향하는 곳으로, 수많은 이가 왕래하는 곳이다. 성 베드로 대성전 내부의 성 요한 바오로 2세(SANCTVS IOANNES PAVLVS PP ll) 교황이 모셔진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과 마주한 외벽이 성상이 위치한 곳이다.
축복식 후에는 로마한인본당 청년들이 준비한 사물놀이가 흥을 돋웠다. 사물놀이패의 흥겨운 리듬에 맞춰 함께 자리한 주교단과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한국 교회의 경사에 호응을 보냈다.
축복식에 앞서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는 유흥식 추기경 주례로 ‘성 김대건 신부 성상 설치 기념 미사’가 봉헌됐다. 유 추기경은 강론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177주년을 맞아 성상을 봉헌한 것은 역사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라며 “참으로 벅차고 감격스럽고 경이로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따금 감정에 북받친 듯 목이 멘 모습을 보이기도 한 유 추기경은 “하느님 고맙습니다. 성모님 고맙습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이여, 장한 선조들을 담는 그런 삶을 살도록 저희가 노력하겠다”고 거듭 말했다. 신자들에게는 “성 김대건 신부의 삶을 본받자”고 재차 청했다.
한국 교회에서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염수정 추기경,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 부산교구 총대리 신호철 주교, 전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가 함께 자리해 기쁨을 나눴다.
이날 오전 교황청 사도궁 클레멘스7세 홀에서는 한국 주교단과 공식 순례단, 로마 거주 한국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특별 알현했다. 교황은 한국 신자들에게 “김대건 신부님은 복음 전파에 대단한 열성을 지닌 분”이라며 “김대건 신부님처럼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평화의 사도’가 되자”고 말했다.
교황은 특히 “김대건 신부님이 신학 공부를 할 때 아편전쟁의 참상을 목격했음에도 많은 이를 위한 ‘평화의 씨앗’이 되었다”며 성인을 본받아 화해의 증인이 될 것을 청했다. 이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김대건 신부에게 기도를 청하자”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언제나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알현 시간에 한국 주교단을 비롯해 공식 순례단과 로마 거주 한국인 사제, 수도자, 평신도 600여 명을 한 명 한 명씩 따뜻한 미소로 환대하고 축복해줬다. 한국 대표단은 교황에게 열띤 박수와 환호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용훈 주교는 교황에게 성상을 제작한 한진섭(요셉) 작가가 별도로 만든 성상 모형을 선물했고, 교황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