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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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평화칼럼] 가장 아름다운 노래

이소영 베로니카(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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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붙잡고 있던 옷깃을 놓친 것 같은, 세상이 나를 밀쳐낸 듯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그해 겨울이 내겐 그러했다. 당시 누군가 「시편」을 읽어보라 권했다. 그걸로도 마음이 어떻게 안 되거든 「욥기」를 찾아 읽으라고, 거기서 필요로 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시편」을 펼쳤다. 그런데 읽다가 ‘저를 미워하는 자들’이 등장하는 구절들에 다다르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입장과 서사가 있을진대 자신은 가련한 피해자로, 상대방은 덤불 속 사자 같은 가해자로 묘사하며 주님이 그들을 짓부수어 주십사 청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기도일까. 성경을 제대로 공부해보지 못한 자의 불경한 의문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 죽이려 몰려드는 와중에조차 한 시종의 잘린 귀에 손대어 고쳐주셨던 주님이 “저를 적대하는 자들은 수치로 옷 입고 창피를 덧옷처럼 덮게 하소서”(시편 109,29)의 저주 섞인 탄원을 듣고 어떤 심정일지 싶었다.

이어서 「욥기」를 읽었다. 신앙이 얕고 신학에 무지한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신도, 신의 아들도 아닌 인간 욥이 올곧음을 시험당하며 받은 무시무시한 고통이 돌덩이처럼 내면을 짓누르는 듯했다. 절대자는 그간 내게 감미로운 음악과 따사로운 볕처럼 오셨고, 별들과 나무들 안에 계셨다. 그렇다면 “진창에다 내던지시니 나는 먼지와 재처럼 되고 말았네”(욥기 30,19)의 저 차갑게 돌아선 단단한 등은 누구의 것일까. 그렇게 가위눌린 마음으로 읽다 페이지를 잘못 넘겨 「아가」의 구절에 닿았다.

“나의 연인이 문틈으로 손을 내밀자 내 가슴이 그이 때문에 두근거렸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일어났는데 내 손에서는 몰약이 뚝뚝 듣고 손가락에서 녹아 흐르는 몰약이 문빗장 손잡이 위로 번졌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주었네. 그러나 나의 연인은 몸을 돌려 가 버렸다네. 그이가 떠나 버려 나는 넋이 나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고 그이를 불렀건만 대답이 없었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자 나를 때리고 상처 내었으며 성벽의 파수꾼들은 내 겉옷을 빼앗았네.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그대들에게 애원하니 나의 연인을 만나거든 내가 사랑 때문에 앓고 있다고 제발 그이에게 말해 주어요.”(아가 5,4-8)

붙잡아주던 손이 사라진 듯한, 이유 모른 채 버려진 것 같은 순간이 이따금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종교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아가」는 이렇듯 캄캄한 순간을 절대자가 노여워 나를 벌하거나 진창에 내던지는 장면으로 묘사하지 않은 듯했다. 좋아하던 이가 문 앞에서 몸을 휙 돌려 가버려 어쩔 줄 모르는, 사랑 때문에 애달파 앓는 마음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잃은 게 아니라 잠시 앓는 것. ‘밀당’을 알지 못하는, 상대가 장난스레 밀어내고 숨어버리면 그대로 엎어져 울음 터뜨리는, 아직 서툴고 미숙한 사랑의 마음.

혹시 무얼 잘못해서 나를 떠난 걸까 싶어 마음이 풀처럼 시든 이에게 짓궂은 연인마냥 불쑥 다시 나타나려고 잠시 저 모퉁이에 숨어 기다리고 계신가보다. 그렇게 상상해 보았다. 그 상상은 욥이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양 만사천 마리와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쌍과 암나귀 천 마리를 선사 받던 장면보다 몇 배나 위로가 되었다. 신성을 지나치게 주관화한 것 아니냐 할지 모르겠다. 성냥팔이 소녀가 켠 성냥불의 환상처럼 그건 네가 그려낸 너만의 하느님이라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믿으려 한다.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가」에서 그러셨듯 그분은 ‘노루처럼, 젊은 사슴처럼 되어’ 서둘러 다시 오실 것임을 말이다. 내게, 그리고 이 순간 두려움과 고통 중에 있을 그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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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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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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