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수도원 일기 (2)
신학교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후엔 현실적으로 결정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이 남아있었다. 먼저 교구 사제가 될 것인지 수도회 사제가 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교구 소속 사제와 수도회 소속 사제?
얼핏 생각하면 같은 사제니까 별로 고민할 것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선,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또 사제가 된 후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신학교 지원할 때부터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시작된 작업이 나 자신 알아보기였다.
나는 결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주저함이 많고 리더십도 탁월하지 않으며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기에 아무래도 교구 사제보다는 수도회 사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결정력 없고 리더십이 없으면 무조건 수도회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이 좋았고 공동체가 나의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수도회를 택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수도회의 삶을 택한 것이 잘 했다고 생각한다. 가끔 학교 아이들이 성장통을 겪으며 가출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진정한 자유와 나 자신을 찾고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 가출(家出)이 아닌 출가(出家)를 결정한 것이었다.
이렇게 수도회 소속 사제가 되리라 결심하니 또 다른 결정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수도회로 갈 것인가? 이다.
수도회는 많다. 그 많은 수도원 중에서 내가 평생 몸을 담고 살아갈 수도원은 어떤 곳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성격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수도원이었다.
바로~, 바오로 수도원이었다. 어머니도 바오로 수도원 미사에 자주 가셨고 형님도 바오로 수도원 수사님으로 계시니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 깊이 숙고하고 신중하게 선택해도 몇 년 살다가 떠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깊은 숙고도 신중함도 없이 덜컥 택한 수도원에서 30년을 살고 있으니 이것도 하느님 뜻인가 보다.
순간의 선택이 30년을 좌우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