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하였다.”(루카 1,29)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기막힌 이야기를 들은 성모님은 곰곰이 생각하십니다. 성경에는 간단히 이렇게 단 한 줄로 표현되어 있는데, 아마도 성모님은 며칠 기도하시면서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큰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천사님! 아까 제게 은총을 많이 받은 여자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정말 죄송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가보세요. 저보다 훨씬 신심 깊은 여인에게 가보세요.”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저는 뒤로 발을 뺄 것 같습니다. 왜? 감당이 안되니까요.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처녀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 죽는 시대였으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천사의 말을 거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곰곰이 생각한 성모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성모님의 대답은 ‘YES!’ 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Augustinus, 354~430)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순간! 성모님의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 ‘예’(Yes)라는 대답이 나올지, ‘아니오’(No)라는 대답이 나올지 모든 피조물이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성모님 입에서 “노!”(No) 라는 대답이 나오면 새롭게 열리게 될 구원의 문이 닫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이 “예스!”(Yes)라고 대답함으로써 이제 새롭게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성모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천사님! 제가 하긴 하겠는데, 만약 이 일로 제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 저를 구해주실거죠?” “대책은 마련해 놓으신거죠?” “요셉에게는 대신 어떻게 설명해 주실거죠?” “앞으로 계획에 대해 저에게 자세히 프레젠테이션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우리의 방식입니다. “아! 이해됐습니다. 그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모님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성모님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사태를 그냥 받아들이십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믿는 구석이 뭐죠? 바로 가브리엘 대천사의 약속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뭐라고 말했죠?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30)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루카 1,35)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이 말을 성모님은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이 천사의 약속에 자신의 존재와 미래를 다 내어 맡기셨습니다. 만약 저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렇게 말했다가 나중에 딴말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성모님은 전적으로 믿으셨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 모두를 살렸습니다. 나중에 엘리사벳 언니도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인류가 지금 구원의 열매를 맛보고 있는 것은 바로 성모 마리아의 위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모님의 용기를 이끌어 낸 것, 그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