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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말을 건네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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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길을 나서 야포로 내려갔다.”(요나 1,3)

우리는 삶에서 하느님과 세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마음의 충동이 자주 일렁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피곤이 풀리지 않은, 너무도 지친 몸과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온갖 업무로부터 도망치 고픈 간절함, 몸서리치도록 꼴 보기 싫은 인간들로부터 벗어나고픈 간절한 희망, 매일 주어지는 막중한 사명과 짓눌리는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부터의 해방, 인생의 너무 큰 십자가인 가족들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어 봅니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여러 서글픈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우리는 슬픈 몸살을 앓습니다. 때로는 요나처럼 하느님의 명령과 부르심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어 도망치려는 시도를 수없이 자주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탄식을 노래한 구약의 옛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의 얼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제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당신 계시고 저승에 잠자리를 펴도 거기에 또한 계십니다.”(시편 139,7-8)

시편 시인의 이 같은 절절한 도망을 절규하듯 온 몸으로 살면서 끝내는 자신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영국의 가톨릭 시인 프랜시스 톰슨(Francis Thom pson, 1859~1907)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거부하던 그는 끝내 아편쟁이로 살다가 빈민굴에서 죽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도망치려 하였던 하느님을 하늘 사냥개로 묘사하는 섬뜩한 시를 남겼습니다.

나는 그로부터 도망쳤다.
밤과 낮과 오랜 세월을 그로부터 도망쳤다.
내 마음의 얽히고설킨 미로에서
눈물로 시야를 흐리면서 도망쳤다.
나는 웃음소리가 뒤쫓는 속에서
그를 피해 숨었다.

그리고 틈이 벌어진 공포의
거대한 어둠으로부터
힘센 두 발이 쫓아왔다.
서두르지 않고 흐트러짐이 없는 걸음으로
유유한 속도, 위엄 있는 긴박감으로
그 발자국 소리는 울려왔다.
이어 그보다도 더 절박하게 울려오는 한 목소리,
나를 저버린 너는 모든 것에게 저버림을 당하리라!

이 시를 음미하면 할수록 가슴에 절절한 슬픔이 묻어납니다. 무엇 때문에 한 인간이 이토록 하느님을 벗어나려고 절규하였던 것일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저주의 삶을 살도록 세상 끝에 팽개쳐 버린 것일까? 도대체 그 무엇이 그가 하느님을 거부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무엇이 그를 하느님이 자신에게 굴레를 씌우기 위해 쫓아오는 사냥개로 비추게 하였을까?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오늘 요나가 주님의 부르심을 거부하며 달아났던 똑같은 심정을 토로하며 말을 건넵니다.

“주님은 내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긴 모든 이들을 어떻게 용서하라는 말씀을 내리시는가? 지금의 내 처지가 이토록 비참의 나락에 떨어졌는데 어떻게 계속 당신만을 믿으라는 말씀이신가? 내 인생에 그토록 희망을 걸었던 그 모든 것이 끝장난 마당에 무슨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신가? 당신은 끝내 침묵으로 일관하시는데 어찌 당신을 사랑하라는 명령이신가?”

도무지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어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였다고 가슴속 응어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고통의 절규는 더욱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그분에게서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더욱 꽉 막힌 절망의 어둠만 가득하여 슬픔의 독백만 웅얼댈 따름입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창조된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오랜 세월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쳤던, 그러나 끝내 그분의 품으로 돌아와 안식을 얻었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뜨거운 고백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을 찬미하며 즐기라고 일깨우시는 이는 당신이시니,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성염 역주, 55쪽)

이제 다시 하느님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말을 건넵니다.

“그분의 부르심은 사랑이었고, 진실한 섭리였으며, 그분 안에 머무르는 것이야말로 참된 자유이며 행복입니다.”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영동가톨릭사목센터 관장)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현재 춘천교구 영동가톨릭사목센터 관장 소임을 맡고 있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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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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