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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문명을 등지다!

[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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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영국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 경(Sir Leonard Woolley)은 이라크 남부에서 호화로운 유물들과 함께 고대도시 우르(Ur, 현재의 지명은 텔 엘 무카이야르)를 발굴해냈다. 이로써 우르가 실존한 도시였으며, 게다가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 ‘우르’는 구약성경을 읽은 사람에겐 익숙한 이름이다. 우르라는 도시는 성경의 「창세기」, 「역대기 상권」, 「느헤미야기」 등에 총 다섯 번 기록되어 있다. 우르는 유대인의 조상이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고향이다.(창세 11, 31 ; 느헤 9,7 참조) 또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면서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끌어낸 이다”(창세 15, 7)라고 말한 그 우르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인류 최초 문명의 중심부, 우르에서 거주하며 그 문명의 혜택을 한 몸에 받은 인물이다. 따라서 유대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고향 우르의 생활방식(수메르 문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르 사람들은 인류 최초의 문자인 설형문자(cuneiform, 라틴어 cuneus는 ‘쐐기’라는 뜻)를 사용했다. 아브라함도 이 문자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르 사람들은 곱셈과 나눗셈은 물론이고, 심지어 제곱근과 세제곱근을 구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숫자 체계와 도량형법은 12진법을 사용했다. 우리는 지금도 이 12진법을 시계에 적용해 사용하고 있다. 수메르인들은 또 물시계와 태음력을 고안해냈으며, 다리 건설에 필수적인 아치와 볼트도 만들어 사용했다.

수메르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지구라트(ziggurat)가 있다. 높은 땅 위에 계단이 딸린 탑을 쌓고 그 위에 신전을 올린 피라미드형 건축물인데, 지금까지도 그 유적이 남아 있어 웅장함을 자랑한다. 많은 성경학자가 이 지구라트를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으로 해석하고 있다. 수메르인들은 이 밖에도 이름과 개성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세계 최초의 문학 「길가메시 서사시」 등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인류가 어떻게 갑작스레, 이렇게 폭발적으로 지적 능력을 향상시켰는지 신비롭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오르막길, 내리막길 세상사가 그렇듯 수메르 문명도 1500년을 넘기지 못했다. 수차례 북방민족(셈족)의 습격을 받고 다시 일어섰지만, 결국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바빌로니아에 의해 무너졌고, 이들의 흔적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수메르인들의 종교다. 놀라운 사실은 수메르 문명의 혜택을 듬뿍 받았을 아브라함의 믿음이 수메르인들의 종교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신은 당시 수메르인들이 믿었던 신과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수메르인들은 농업과 전쟁 등을 위한 현세적인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영적인 평화’, ‘삶의 위안’, ‘삶의 의미’, ‘영혼의 행복’, ‘최고신과의 합일’ 등과 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의 신은 영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과 열정을 동시에 지닌 존재였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믿었던 신은 인간의 영혼과 대화한 절대신이었으며, 삶의 위안과 영적 평화를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당시 인류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그런 신앙을 아브라함 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메르 문명이 바빌로니아에게 무너진 것은 대략 기원전 2000년경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아브라함 가족은 우르를 떠난다. 우르 지역에 거주하던 아브라함 가족의 집단 이주는 어쩌면 바빌로니아의 수메르 침공에서 촉발되었는지도 모른다.

부럽다. 기원전 2000년경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은 당시 인류 최초, 최고의 문명을 접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인류 최초의 문명세계에서 살았고, 그 문명의 혜택을 듬뿍 받았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 하나만 믿고, 그 문명을 등진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시인이 화장실과 샤워 시설 없는, 먹을거리조차 변변치 않은 아프리카 미지의 땅으로 가는 것과 같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문명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간다. 유일신이 가라는 곳으로 간다.


글 _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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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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