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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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그 아부지 머하시노

[월간 꿈 CUM] 지금 _ 나와 너 그리고 우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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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그 아부지 머하시오?” 사람들은 영화 「친구」 중 기억에 남는 대사를 꼽으라면 단연 이 말을 꼽는다. 중년의 선생님이 시험성적이 나오지 않은 학생들을 훈육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의 뺨을 때리면서 묻는 말이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의 질문에 “회…, 회사에 다니십니더…”라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회사? 그래 이 빌어 묵을 놈아! 느그 아부지는 회사에서 직장 상사한테 굽신거리가메 니 공부시키는데, 니는 시험을 30점도 못 받나? 어이?” 하면서 뺨을 때린다. 

또 한 학생은 “장의삽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선생님은 “장의사? (뺨을 쥐고 흔들며) 그래 이놈아! 느그 아부지는 죽은 사람 염해가메 오만 고생을 다 하는데 니는 공부를 이꼬라지로 하나? 어이?” 하면서 역시 뺨을 때린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준석의 뺨을 흔들어가며 “말해라~ 아부지 뭐하시노?” 그러자 준석은 “건달입니다” 하고 대답한다. 순간 선생님은 잠깐 멈칫하다 이내 분을 터뜨리며 더 강하게 뺨을 때리고 발길질을 하며 말한다.

“좋겠다! 느그 아부지 건달이라서 좋겠어… 이 새빠질 놈아! 느그 애비한테 가가꼬…” 이때 준석이 일어나 선생님에게 눈을 치켜뜨며 대들 듯이 말한다. “(악에 받쳐 이를 악다물며) 누가 좋다 했습니까?” 준석이 살기 어린 눈으로 쳐다보자 선생님은 얼어 붙어 아무 말을 못하고 만다.

1970~1980년대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기성세대들은 학창시절 이런 선생님을 한 번쯤 만나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모든 선생님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개 학교에서 엄한 규율을 담당하는 선생님은 학생들의 수치심을 자극하여 동기를 강화시키는 이른바 충격요법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셨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을 소개한 이유가 있다. 며칠 전 상담심리사를 준비하는 수련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선생님은 현재 50세가 넘은 나이에 교도관으로 재직하고 있지만, 다시 상담심리 대학원을 다니며 상담수련을 받고 있었다.

내가 늦깎이 학생이 된 이유를 묻자 자신이 교도관으로 재직하면서 경험한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 분은 수형자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넘어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수형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가운데 그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체험한 선생님은 좀 더 전문적인 상담을 공부하고 싶어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만나 온 수형자들 중에는 전혀 대화와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게다가 대화를 핑계로 선생님을 조종하거나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수감자들도 있었다. 신앙인으로서 선생님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고유한 선성(善性)을 지니고 있음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거나 진실한 대화를 하기 어려운 수형자들을 볼 때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들의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인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리 거칠고 폭력적인 수형자라 하더라도 갑자기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변하게 되는 특효약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가 누구신지를 물어보면 대부분 갑자기 어린 양처럼 변하더라는 것이다. “아버님은 어떤 분입니까?” “어머니는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수형자들은 모두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조용하게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고유한 인격을 지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독립적 존재이다. 하지만 동시에 위로는 부모와 조상, 그리고 아래로는 자녀와 후손에게 연결되어있는 관계적 존재이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교만하고 이기적인 자아가 나타나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하지만 가족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겸손하고 이타적인 자아가 나타나 타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때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사랑으로 연결되어있는 관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때야 비로소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간단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글 _ 박현민 신부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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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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