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살 아침에 모세가 생각났다. 아들 없는 미디안 제사장의 양 떼를 쳐주며 처가살이 40년, 사위로 얹혀사는 40년 동안, 모세는 득도 해탈 초인(超人)이 되었을 게다. 왜 그가 누리는 득도 해탈을 깨트리고, 느닷없이 나타나, 당신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라고?
스스로 계신 분께서, 그 엄청난 사명을 맡기시려거든, 온갖 지식과 무술을 익혀, 뜨건 피가 펄펄 끓어 넘치던 젊은 왕자 시절에나 하시지, 그 좋은 시절은 살인(殺人)까지 하도록 내버려 두셨다가, 죄가 들통나, 도망쳐 세상 것 잊고, 겨우겨우 편해진 80살 늙은 양치기에게, 마치 쓸모없는 80살 늙은 모세가 되기를 기다리셨다는 듯이.
말도 안 됩니다. 살인 죄인에 도망자이고 함께 왕자 교육받던 람세스는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가장 소수(약자)이기에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면서, 430년이나 벽돌공 노예로 방치하셨다가, 별안간 왜 지금입니까? 주님의 선민(選民)이 대대로 노예 무지막지 쌍것들이 되고만 이제 와서요?
저는 아닙니다. 말도 어눌하고 몸도 늙었습니다. 저는 이대로 사는 게 좋습니다.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얼마나 사양하고 거절했으면 주님이 노하셨을까?
네 이름은 모세다, 나일강에서 건져졌으니, 네 동족도 건져내야 하는 이름 값을 하라. 너 혼자만 편히 사는 게 미안하지도 않냐? 나는 80살 늙은 모세를 150 이해했다.
늙어 쓸모없는 80살 모세여야만 했다. 홍해를 건넜고, 바위에서 생수를 쏟아냈고, 십계명을 받아냈고, 마중 나온 강적(强敵)들을 이겨냈고, 430년간 대대손손 노예근성의 쌍것들을 절대자(絶對者)의 선민(選民)답게 개조하는 40년을 이끌었다. 그것도 불모의 사막에서. 장정만 70만 명에, 아이 여자 노인까지 200만은 넘었을 무지막지 쌍것들을, 모세 아닌, 주님이 이끄셨다. 모세 5경을 읽는 후대자손들은 모세의 리더십 아닌, 주님의 역사하심으로 알도록, 바위에서 생수를 낼 때도 지팡이로 한번 아닌 2번을 쳤다. 모세의 오만이었다. 그 벌(罰)로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가고, 느보산에서 건너다만 보았고, 바톤은 여호수아에게 넘겨졌다.
나도 종합병원이다. 주님은 내게도 80살 되기를 기다리셨을까? 모세 발톱 밑의 때만도 못하지만, 뭔가 꺼리를 주실지도. 감히 생각해보는 80살이다. 겨우 80인데! 온갖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주님께 뭔가를 기대하는. 노망 할머니 하나쯤도 있어, 웃기는 재미 아니랴.
글 _ 유안진 (시인, 글라라,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