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 반↘가↗워요!

벼리마을에서 온 편지 (1)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이재훈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사무국장
감사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의 출근시간에 서로에게 인사하는 소리는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입니다.

이렇게 다소 평범한 인사가 오가는 사이에 우리 기관의 장애인 이용자 한 분은 “국장님~ ♬ 반↘가↗워요♬”라며 리듬을 타고 인사합니다. 그러면 저도 “네, 000 이재훈 사무국장 님, ♬ 반↘가↗워요♬”라고 똑같이 리듬을 타며 인사를 합니다. 이렇게 아침 업무시간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기에 선생님이 집에 전화를 합니다. 전화를 받으신 어머니께서는 제시간에 작업장으로 출근을 했다고 합니다. 일단 어머니께는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이용자분에게 전화를 겁니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연결이 됐습니다. “지금 어디세요?”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이제 버스에서 내려서 작업장으로 출근하는 중이라고 답변을 해옵니다. 안심입니다. 일단 작업장으로 출근하고 있다니~ 기다려 봅니다. 그런데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도 작업장에 출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하다 싶은 마음에 선생님이 다시 전화를 겁니다.

“여보세요~, 000님, 지금 어디쯤이세요?”라는 물음에 이용자분께서는 지금 어디인지 본인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주변에 무엇이 있느냐고, 뭐가 보이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경찰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경찰분과 통화할테니 경찰분에게 가셔서 전화기를 좀 받아보시라고 했더니, 눈앞에는 보이는데 그 경찰분에게는 지금 다가갈 수 없다는 답변을 해옵니다. 잠시 난감하던 차에 “아! 이제 경찰분에게 다가갈 수 있어요, 전화기를 바꿔드릴께요!”라고 말을 합니다. 선생님이 정중하게 경찰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그러자 그 경찰분이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본인은 경찰이 아니고 모범택시 기사로 지금 인덕원 사거리에서 교통정리 중이라고~, 아! 그분은 도로 위에서 교통정리 중이신 모범택시 기사님이셨고, 도로 가운데에서 교통을 정리하고 있는 관계로 우리 이용자분 눈에는 보이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거리에 있으셨던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횡단보도 신호에 우리 이용자분께서 다가가셔서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고, 너무나 친절하게도 택시를 태워서 우리 기관에 무사히 출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참 고마우신 모범택시 기사님이셨고, 지금도 그분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우리 이용자분을 안전하게 출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심에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기관 이용자분이 출근한 후에 어떻게 인덕원 사거리까지 가게 된 건지에 대해 확인해보니, 글과 숫자를 모르는 이용자분이시라 그림으로 버스 숫자를 기억하고 그 버스를 타고 매일 출퇴근을 하는데, 하필이면 오늘따라 내려야 하는 정거장에 아무도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날에는 내리는 사람이 있어서 버스 하차 벨을 다른 사람이 누르고, 버스가 정차하면 내려서 출근했는데, 오늘은 아무도 내리지 않고, 정거장을 지나쳐 가다보니 인덕원 사거리까지 가게 되었다는 사연입니다. 앞으로는 내리는 장소를 잘 확인하고 벨을 꼬~옥 눌러야 한다고 선생님과 확인 또 확인을 합니다. 오전 시간 동안 출근만 하시느라 고생하신 우리 이용자분을 보니 저도 모르게 리듬을 타고 인사합니다. “000님,♬ 반↘가↗워요♬.”
 
9월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우리나라 으뜸 명절인 추석이 있는 달입니다.

우리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에서도 추석을 맞이하면 장애인분들과 함께 송편 만들기를 해봅니다. 각자의 개성대로 송편의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크기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그래도 우리 이용자분들은 정말 열심히 정성을 다해 송편을 빚습니다. 정성스럽게 만든 송편을 사랑하는 가족분들과 함께 나누려는 마음입니다. 이렇듯 이번 추석을 보내면서 가족과 친척과 이웃분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보여주는 시간이 되시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마음속에 남아 있거나, 누군가가 나에 대한 미움이 있다면 이번 추석을 맞이하면서 서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 반↘가↗워요♬”라고 기쁘게 인사를 나누시는 행복한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9월 순교자 성월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사랑과 용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껴봅니다.

“더 많은 사랑을 보여준 이가 더 많은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루카 7,47)


  글 _ 이재훈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사무국장)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신앙 안에서 흥겨운 삶을 살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년 가까이 가톨릭 사회복지 활동에 투신해 오고 있으며 현재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사무국장이다. 하루하루 매순간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9-2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1. 26

시편 31장 10절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께서 그들을 모아들이시고 목자가 자기 양 떼를 지키듯 그들을 지켜 주시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