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놓은 신발이 열다섯 켤레, 열세 켤레, 열 켤레 그렇게 자꾸 줄어든다.
군대 내무반처럼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 마루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 우리집(목계반점) 구조상 손님들이 벗어놓은 신발을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그러면 몇 분이 오셨는지 미리 물컵과 물병을 챙겨 주문받기에는 딱 좋다. 털신에 나무지팡이 하나, 낡은 구두에 신식 알루미늄지팡이 하나. 누구의 신발이고 어느 분의 지팡이인지 들어오실 때 눈여겨보았다가 나오실 때 챙겨드리면 내껄 어떻게 알아서 이리 주냐고 좋아하신다. 새 신발을 신고 오실 때는 마루 밑으로 슬쩍 들여 밀고 들어오신다. 행여 남루한 신발이랑 바뀔까봐 아끼시는 마음도 보인다.
개업 때부터 지금까지 고객이신 할아버지들 모임에서 한 분 두 분 참석을 안 하셔서 여쭈어 보면 “요양원 들어 갔잖어 지난달에” 또는 “추석 잘 쇠고는 병원에 갔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잖어” 하신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부고 소식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찾아가 조문이라도 했을 텐데 안타까움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그렇게 늘 함께하던 친구가 하나둘씩 세상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는 건 어떤 심정일까. 자다가 곱게 가는 게 큰 복이라고 먼저 가신 분들을 부러워하신다.
우리 동네에 태어나는 아기는 없고 돌아가시는 분만 계시니 이러다가 목계반점 문 닫는 건 아닌지, 허기야 나도 나이 드는데 언제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한 이치인 것을….
우리 집에 최고의 단골이시던 할아버지들이 계셨는데 모임의 회장으로 계시던 이상은 할아버지가 그런 분이셨다. 봄이면 모판에 볍씨를 넣을 때부터 가을 추수 때까지 동네 합동으로 일을 하실 때마다 우리 가계를 이용하셨다. 벼 베기를 하실 때면 이 논, 저 논 콤바인으로 옮겨 다니시며 일을 하시는데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구렁골, 쌍다리 뚝방길, 굴다리 옆논 등 여러 설명 필요 없이 대충 말해도 알아서 짜장면 들고 찾아가니 편하신 것도 있으셨을 것이다. 맞다! 편하다는 것, 지갑을 빼놓고 와도 다음에 줄게!가 통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서 해주고 서비스까지 알아서 주는 게 단골식당 아니던가! 그러다 보면 가끔 마나님들도 출동하시는데 “아니 얼마나 잘해 주길래 이 양반이 꼭 여기로만 오는지 내가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하신다. 아마도 젊었을 적 색시집에 돈 꽤나 갖다 버린 여력이 있으셨나보다. 단무지에 짜장 한 그릇 드시는 걸 확인하신 후에야 아무 말씀 안 하시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껴 주시던 할아버지께서 추석 쇠고는 그리 허망하게 가실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참 마음이 아팠다.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 열심히 일하고 들어선 농부의 흙 묻은 장화, 관리공단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의 안전화, 외국인들의 조리신발, 할머니들의 파란색 쓰래빠(슬리퍼는 실내신발, 쓰래빠는 실외신발), 훈련 나온 군인들의 땀내나는 군화….
이제 막 첫걸음을 걷는 아가의 뽁뽁이 신발부터 할아버지의 낡은 털신까지 각자의 삶이 묻어있는 신발을 정리하다 보면 나는 작은 감동과 함께 낮은 마음으로 돌아간다.
엄앵란. 신성일 씨의 일화에서, 정치하다가 망해서 지방에서 식당을 하던 때, 어느 날 신성일 씨가 손님들 신발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는데 울컥하더란다. 그래도 한때는 제일 잘 생긴 영화배우에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잘 나가던 사람이 저렇게 남의 신발이나 정리하나 싶어 당장 그만두라고 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엎드려 신발을 정리하는 내 모습도 속상했는지 아이들이 자라 신발 정리기를 사다주었다.
처음엔 서서 정리하는 것이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고 재미가 나서 손님이 신발을 벗어놓자 마자 쫒아가서 정리를 했다.
그런데 편한 만큼 무엇인가 내가 갖고 있던 소중함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나마 나만의 묵상 시간을 가졌다.
“죽음 앞둔 그분이 손수 나의 발을 씻기시던 그 사랑의 손길.”
그래서 나도 기꺼이 허리를 굽혀 손님의 신발 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셨던 사랑을 느끼고 싶어서….
글 _ 박애다 (애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25년간 중국음식점 '목계반점'을 운영해 오고 있다.
삽화 _ 김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