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구세주 예수님,
저희를 사랑하신 까닭에
이 무거운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셨으니
저희도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십자가를
기꺼이 지게 하소서.
남자는 지금 십자가를 짊어지고 처형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어깨는 십자가의 무게로 해어졌습니다. 채찍으로 난타당한 등과 복부의 피부는 곳곳이 찢어졌습니다. 깊은 압력을 가하는 가시로 인해 머리 혈관이 터졌고, 그 피는 눈 밑 우묵한 곳으로 흘러 내렸습니다. 발은 길의 먼지로 까맣게 되었습니다. 오른쪽 발 엄지발톱은 반쯤 부러진 상태로 위로 꺾여 올라와 있었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는 마치 바위라도 붙어 있는 듯 무거웠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 참으로 엄청난 고통입니다. 이런 십자가 고통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죄가 없는 상태에서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지십니다. 그 십자가에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십자가를 피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억지로가 아니라 당신의 온 마음과 온 뜻을 다해서 그 고통스런 십자가를 선뜻 지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선 십자가의 고통과 그 뒤에 이어지는 부활 역사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이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핑크빛을 떠올립니다.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에는 많은 책임과 고통, 수고가 함께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를 허락하실까요.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지 않으면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실까요.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 안에는 사랑이라는 큰 구원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사랑과 십자가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내팽개치는 것은 사랑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내팽개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하고자 한다면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가 싫다면 사랑의 열매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싫습니까? 그렇다면 사랑을 포기하면 됩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삽화 _ 김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