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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허용 스위스 떠나 한국에서 존엄한 죽음 맞은 나탈리씨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안락사 권유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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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간암으로 고통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나탈리(Nathalie M, 세례명 나탈리)씨가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를 떠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생명의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 여정을 보내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지난 8월 8일 서울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스위스 병원에서 말기 간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가 의식이 혼미해 대화가 어렵고,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알렸다”는 사연이었다. 메일을 작성한 나탈리씨의 자녀는 “한국이 간암 치료에 앞서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하느님께 어머니를 부탁하는 마음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느냐”고 청했다.
 

서울성모병원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한 나탈리씨 남편 트리베르트씨(왼쪽에서 네 번째)와 옥진주 교수 등이 성모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

스위스를 비롯한 20여 개 주한 대사관의 주치의로, 비자검진클리닉 및 여행클리닉 전담의로 활동하는 서울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 옥진주(가타리나) 교수가 메일을 확인하고 나탈리씨의 아들과 통화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나탈리씨와 가족은 “생명을 인위적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옥 교수는 바삐 움직였다. 간암 혈관 및 인터벤션 치료의 권위자인 영상의학과 천호종 교수, 간암 전문가인 소화기내과 성필수 교수와 나탈리씨의 의무기록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치료 가능 여부를 논의했다. 패혈증 및 간성뇌증으로 의식이 저하된 데다, 간 기능 악화로 심한 황달과 복수가 동반된 상황이었지만, 성 교수는 “충분히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스위스에서 한국까지의 이송. 전문적으로 환자를 실어나르는 에어앰뷸런스 항공편이 필요했다. 이송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러운 쇼크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고비도 있었지만, 지난 8월 14일 에어앰뷸런스로 입국해 무사히 서울성모병원에 도착했다. 성 교수와 응급의학과 임지용 교수는 지체없이 응급처치와 간 기능 회복 치료를 시행했다. 나탈리씨는 이틀 후 의식을 회복했고, 일주일 뒤에는 안경을 끼고 독서를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몸 상태가 나아졌다.

그러자 아들과 며느리, 손자녀가 속속 입국했다. 그동안 남편 트리베르트(Tribert)씨와 큰며느리 A씨는 나탈리씨 곁을 지키며 깊은 대화를 나누고 기도도 함께 바칠 수 있었다. 서울성모병원 원목실은 매일 병실을 찾아 나탈리씨의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하지만 간암 치료를 계획하며 희망을 품었던 지난 9월 4일 갑자기 폐렴이 오면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나탈리씨는 안타깝게도 10일 새벽 78세를 일기로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했다.
 
나탈리씨가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서울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 옥진주 교수.

옥진주 교수는 “환자분이 스위스에서는 의식상태가 저하되어 가족과 대화조차 어려웠지만, 서울성모병원에서 치료받고 상태가 호전되면서 가족 모두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고, 아름다운 이별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맏며느리 A씨는 ‘원목실 수녀님들의 기도가 어머니께 아주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며 “병원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특히 “스위스에 있을 때 고인의 셋째 아들은 주변에서 안락사를 권유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며 “환자분이 저희에게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이번을 통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더욱 느꼈다”고 말했다.
 
성필수 교수

주치의 성필수 교수는 “사실상 치료를 포기한 환자가 본원에서 생존을 연장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낸 것은 저희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선사한다”며 “앞으로도 간암 환자들의 간 기능 보존을 통해 생존 기간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진료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남편 트리베르트씨는 서울성모병원의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와 보살핌에 감동해 아내의 이름으로 연구 발전기금 5만 달러(한화 약 6700만 원)를 기부했다. 아울러 자신이 운영하는 자선재단을 기존 교육 분야에서 의료 지원까지 확대해 아프리카에서 치료받기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는 계획도 밝히고 떠났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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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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