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말기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나탈리씨가 치료를 받았던 스위스는 1942년부터 안락사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국가다. 스위스는 형법 제115조에 따라, ‘이기적인 동기’로 다른 사람의 자살을 돕거나 유도한 경우에만 처벌하고 있다.
조력 사망을 허용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말기 환자나 난치성 질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지만, 스위스는 허용 기준이 느슨해 심지어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안락사 조치가 가능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웃 국가인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 조력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이 스위스로 몰려갔다. 최근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에서도 사람들이 스위스를 이러한 목적으로 가고 있다. 조력자살을 지원하는 곳인 스위스 디그니타스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독일인 1449명, 영국인 531명, 프랑스인 499명이 조력자살을 선택했다.
현재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국가는 스위스를 비롯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로 늘었고, 미국과 호주 일부 주에서도 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기계장치로 연명하는 환자에게 조력자살 신청을 받은 후 심사를 통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제한적 조력자살을 허용했다. 국내에서는 2022년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안 의원이 발의한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가톨릭교회는 조력자살을 반대한다. 서울대교구 가톨릭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장 구요비 주교는 6월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본 조력존엄사 법안’이란 담화문에서 “조력존엄사법은 안락사의 하나인 ‘조력자살’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소극적, 적극적 안락사 모두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하는 것이기에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밝혔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문희종 주교도 5월 제13차 생명 주일 담화에서 “질병과 고통을 겪는 생명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며 “만일 안락사나 조력 자살이 법제화된다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죽음을 강요받는 상황도 생길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문가들은 고통 속 말기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완화 의료를 더 활성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 호스피스ㆍ완화의료학회는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존엄한 돌봄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또 호스피스 전문가인 홍영선(전 서울성모병원장) 박사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를 하면 통증의 95가 해결될 정도로 효과가 좋다”며 조력자살 대신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통한 존엄한 죽음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