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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오지에서 다시 만나게 해주신 그분의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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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국제봉사단(FIAT) 26명이 다섯 번째 캄보디아를 찾았을 때였다. 집짓기(나무 기둥을 세운 후 마루방을 만들고, 지붕과 벽에 양철을 두르는 정도)를 위하여 시아누크빌에서 비포장 길을 두세 시간 달려 차를 세워두고, 논밭길을 걸어가 개울 건너에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닿았다. 온통 헐어있는 그 집을 허물고 다시 짓기 위해 기둥을 세우고 지붕에 올라가 땀을 흘리고 있는데, 서서히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배까지 아파왔다. 이내 고열과 설사, 어지러움으로 시야가 흐려지면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해 논바닥에 비닐을 깔고 누웠다. 그늘도 없는 뙤약볕.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나를 업고 뛰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후에 알고 보니 현지 신부님이셨다), 덜컹대는 화물차에 실려 시골길을 달리는 것 같았다. 도착한 곳은 어느 작은 병원. 누군가 나를 끌어내렸고, 이동 침대에 실려 들어가는 내 팔을 잡고, “Papa! Papa!”하고 외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머나먼 이국땅, 오지 중의 오지, 작은 시골병원에서 나에게 “Papa”라고? 눈을 떴지만, 흐린 물속에 가라앉은 흑백사진처럼 뿌옇게 보일 뿐이었다.

2014년 아시아청년대회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셨을 때의 일이다. 2011년 첫 캄보디아 활동 때부터 알고 지냈던 Bun Hab이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가톨릭 청년의 자격으로 한국에 온다는 연락을 받고 반가움에, 그를 포함한 캄보디아 청년 3명이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도록 배려한 적이 있었다. 그의 형편으로는 아시아청년대회 같은 기회가 아니면 한국 방문은 어려운 터라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고, 구면이었기에 그때부터 그는 전화 통화나 이메일에서 우리 내외에게 ‘Papa, Mama’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병원으로 실려 들어가면서 깜박거리는 의식을 겨우 붙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Hab이 보였다. Hab이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햐~! 세상에! 넓고 넓은 세상의 아주 작은 도시, 오지의 한 병원, 한 뼘 공간에서 우리는 영화처럼 우연히도 그렇게 다시 만났다. 이것은 분명 기막힌 드라마였다. 공동 입원실인 듯 커다란 공간에 침대 네 개가 놓여있었고, 환자는 나 혼자였다. 러시아 사람인 듯한 의사가 다가와 내 체온을 재더니 “Thirty-nine point five. Heatstroke.”라고 말하고, 내 팔에 링거를 꽂고는 휙 돌아나갔다. 내내 지켜보고 있던 Hab이 대야에 찬물을 떠다 놓고 내 옷을 벗기더니 찬물로 온몸을 닦아내며 간혹 열도 체크하고 말도 걸면서 밤을 꼬박 새웠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Hab에게 내 손가방을 가리키며 ‘중요하니(봉사단 경비가 내게 있었다) 잘 지켜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병원의 일반 직원으로 내가 도착하자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었고, 아침에 죽을 가져다주는 등 Hab의 밤샘 보살핌 덕분에 나는 다음날 늦은 오후 일행과 다시 합류하여 나머지 봉사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런 특별한 만남을 이루어 주신 그분의 뜻은 무엇일까.

그 후 2020년 2월에 다시 가려고 항공권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으나,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버렸고 얼마 되지 않지만 집짓는 경비만 보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최근에 길이 열렸으니 다시 준비할까 보다. 거기에 은인 아들이 있으니까.

“2027년 세계청년대회에서 그때 캄보디아 시골 병원의 기적처럼 다시 만나자. 이번엔 병원 아닌 우리 집에서 다시 만나자. 그리고 캄보디아에 더 많은 집도 짓고 더 많이 사랑하자. 그분은 절실히 원하면 들어주신댔지?”
남군희(스테파노·대전교구 탄방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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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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