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느님께서 가끔 우리에게 손을 내미실 때가 있습니다. 구원 계획을 당신과 함께 이뤄 나가자고 손을 내미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많은 경우,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뜻은 우리 인생 계획에 없던 것입니다. 내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 경험하지 않았던 일,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하느님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느님 저는 그런 걸 생각해 본 일이 없어요.” “내 인생 플랜에는 그런 것이 없다니까요!”
물론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네”라고 대답하거나,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그 순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어그러집니다.
성모님은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처녀가 잉태할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 앞에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응답 하나 때문에 인류가 구원의 열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 순간 하느님은 우리에게 구원 계획에 함께하자고 초대하십니다. 지금 당신은 “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계십니까?
“과연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두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나를 감싸주실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진다면 어떤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가족의 저녁식사 밥상을 직접 차리지 않습니다. 자동차 운전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손을 통해 밥상을 차리시고, 자동차 운전을 하십니다. 우리의 손을 통해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십니다. 우리들의 협력을 요청하십니다. 구원 역사는 그렇게 이뤄집니다. 본당에서 봉사 요청을 받아보신 경험들이 있으실 것 입니다. 그럴 때 “제가 능력이 없어서…” “제가 요즘 바빠서…”라고 대답하지 마시고, 일단 한번 하느님께 맡겨 보십시오. 받아들여 보십시오. 그러면 나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구원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여러분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예비신학생 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 모임이 예비신학생 모임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지도 신부님이 갈 때마다 짜장면을 사주시길래 그걸 얻어먹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그런데 고3이 되자 신부님이 갑자기 신학교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 보시더라구요. 당황한 저는 처음에는 신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인생 계획에는 사제가 되는 것은 없었거든요. 저는 당시 나름대로 인생 계획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몸이 허약해서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겼는데, 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이후 부모님이 소아과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나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나를 성직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평생 혼자 살아야 하고, 재산도 가지지 못하고, 말주변이 없는 내가 강론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모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때 신부님은 제게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묵주기도를 하고, 성경도 읽었습니다. 그때 어떤 성령의 힘이 저와 함께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신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이것은 인간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성령의 은총으로 얻은 열매였습니다. 두려움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후 하느님은 나를 통해 수많은 열매를 맺어 주셨습니다.
구원의 열매는 믿음이라는 거름을 먹고 자랍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생깁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참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 행복은 참으로 큽니다. 형언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성모님을 통해 이루신 큰 섭리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탄생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