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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여라?

[월간 꿈 CUM] 지금 _ 나와 너 그리고 우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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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마태 5,44-45)

예수님의 말씀 중에 너무나 이상적이라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가르침을 꼽으라면 단연 이 말씀이 떠오를 것이다. 그만큼 실천이 어렵다고 느낄 뿐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이해조차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1차적인 의미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이해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마태 5,38-39)

하지만 예수님 말씀 안에는 원수를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앞서 좀 더 심오하고 근원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 5,45)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사실 원수는 개인적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게는 원수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은인일 수 있는 것이 인간 관계의 특성이다. 즉 원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관계적 실재’이지 자체로 존재하는 ‘속성적 실재’가 아니다.
원수가 만일 관계적 실재라면 원수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 달라지게 된다. 관계는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아질 수도 있는 가변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발생한다는 말의 뜻은 “조건이 충족되면 발생하지만, 조건이 맞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다”는 간단명료한 원리를 담고 있다. 따라서 ‘관계적 실재’라는 개념 안에서 원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형성될 때 ‘발생하는 것’이다.

미운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은 자체로 ‘미운 사람’인가? 아니면 괜찮은 사람인데 미운 짓을 했기 때문에 미운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인가? 아마 전자라고 생각한다면 ‘미운 사람’인 그 사람에 대한 다른 면모는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는 짓마다 모두 밉게 보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좋은 행동을 해도 뇌에서는 미운 존재가 예쁜 행동을 할 일이 없다고 판단하고 모든 행동을 미운 것으로 판단해 버린다. 소위 ‘확증편향’(confirmationbias)이 발생한다.

반면 괜찮은 사람인데 미운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엔 전혀 다른 판단이 이루어진다. 그 사람이 하는 행동에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는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의 행동을 관찰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은 때론 미운 짓을 하기에 미운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어쩔 땐 분위기를 좋게 해주는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어쩔 때는 밥값을 먼저 내주는 멋있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자체로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그 자체로 좋은 사람, 즉 선한 사람일 뿐이다. 단지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조건이기에 악을 선택하고 행하는 것이다. 그 결과 선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나게 된다. 자체로 악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인이 악행을 행할 때 악인이 되는 것이다. 악마는 본래 천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보면 이해가 된다.

원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와의 관계에서 악을 행하고 불의를 행한 그 사람은 자체로 원수가 아니라 원수의 행동을 한 선한 사람이다. 그 사람 자체를 그 사람의 행동과 동일시만 하지 않는다면, 사실 원수는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억지로 사랑해야 할 원수도 없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이나 선인이나,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 모두에게 햇빛과 빗물을 내려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느님 앞에서 존재 자체가 악인이며 그 속성 자체가 불의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악한 행동을 그 사람의 본질로부터 구별해 내는 이른바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는 원수를 사랑하는 비결이 될 수도 있지만, 원수가 발생하지 않는 더 근원적인 지혜일 것이다.
글 _ 박현민 신부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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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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