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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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힘에 의한 평화’라는 허상 / 이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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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면 청년 시절 성당에서 함께 활동하던 선후배 친구들과 모여 함께 미사 드리고 식사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벗들이라, 이번 추석 만남에는 곧 군대에 가게 되거나 현재 군 복무 중인 아들들의 이야기가 주요 화제가 되었습니다. ‘군인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보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군인 아들’을 두게 된 우리의 나이를 실감하며 군대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습니다.

지난봄 아들을 군대에 보낸 친구가 요즘엔 군대에서 자유 시간에 휴대전화 사용도 가능하고, ‘더캠프’라는 국군 소통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으로 위문편지도 보낼 수 있으며, 병사 월급도 크게 인상되어 ‘장병내일준비적금’이라는 목돈 마련도 가능해졌다는 등 여러 정보를 들려주어, 군인들의 복지가 많이 좋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아들에게 군대 가면 주일미사에 꼭 가라고 신신당부하고 다짐도 받아놨는데, 훈련소에서는 약속대로 미사에 참여했으나 그 많은 장병 중 단 두 명만이 천주교 신자였고, 그나마도 자대배치를 받은 부대에는 성당이 없어서 미사에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군종사목의 현실도 조금 엿보았습니다.

군대 이야기는 그 아들이 훈련하다가 다쳐서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했었다는, 가슴 철렁한 경험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때가 마침 해병대 채수근 상병(당시 일병)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즈음이라 사고 소식을 듣고 혼비백산해서 부대로 달려갔었다며, 당시에는 너무나 경황이 없어 아들이 퇴원하고 부대에 복귀한 이제야 소식을 전한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친구는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친 이들에게 붙는 ‘병장 만기 제대’라는 말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새삼 실감했다며, 남은 복무 기간을 부디 무사히 마치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지”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분단된 이 땅에서 태어나 무거운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 20대 남자 청년들의 처지가 안쓰럽기만 합니다.

올해 추석 연휴 직전에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는 대규모 병력과 무기 장비가 동원된 시가행진이 이뤄졌습니다. 북한의 군사 도발에 맞서 국방력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10년 만에 열린 시가행진이라고 하는데, 1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는 그 행진을 보며 우리의 군사력과 무기가 자랑스럽다는 마음보다는 ‘북한에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이미 북한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는 나라에서 굳이 이런 과시를 하는 이유도 모르겠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언제든 우리는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선전포고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 전부터 서울 시내 상공에서 며칠간 비행 훈련이 이뤄졌는데, 서울시의 알림 문자를 받아 이것이 훈련 상황임을 알고 있는데도 도심 한복판을 낮게 나는 전투 비행기들의 비행음이 마치 전쟁이 벌어진 듯한 느낌을 주어 한껏 공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장병들의 군 생활이 더 고생스러울 것은 뻔하고, 자칫 전쟁이라도 나면 최전선에 있는 우리 아들들의 생명이 가장 먼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이번 국군의 날 행사 표어는 ‘힘에 의한 평화’였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힘에 의한 평화는 군비 경쟁을 부추길 뿐이라며,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315항)라고 경고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강한 군사력이 평화를 줄 수 있다고 믿더라도, 평화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 신앙인들은 “참 평화는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간추린 사회교리 517항)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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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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