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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지옥으로나 가버리라, 말할 때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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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오두막」에 그런 대목이 나온다. 여섯 아이의 아버지 매켄지는 어린 세 아이만 데리고 캠핑을 간다. 위의 두 아이가 보트를 타다가 뒤집어지는 사고가 일어나자 매켄지는 호수에 뛰어들어 아이들을 구한다. 그런데 그 북새통 속에서 겨우 여섯 살짜리 소녀였던 막내는 납치되었다. 그 후 근처에서 아이의 피 묻은 드레스가 발견되고 그들은 시신 없이 장례를 치른다. 이후 가족들은 저마다의 죄책감과 분노로 각자, 그리고 함께 불행해져 갔다.

어느 날 하느님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한다. 막내 딸 미시의 피 묻은 드레스가 발견된 오두막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강렬한 이끌림에 끌려 그는 오두막으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하느님을 만난다. 흑인여성 성부, 아랍 남성 성자 그리고 동양여성 성령. 그들은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며 막내딸 미시를 납치 살해한 범인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그럼요, 그놈은 지옥에나 떨어지라고 해요.”

매켄지가 소리쳤다.

“당신 딸을 잃은 것이 그의 탓인가요? 그를 무시무시한 인간으로 만들었던(이 범인은 무자비한 가정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어떻게 하지요?”

“그자도 지옥으로 같이 가라고 해야죠.”

“매켄지, 우리가 어디까지 가야 할까요?(그도 또 폭력 가정의 피해자였으니) 그 할아버지도 보내고 또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보내라고요? 이 망가짐의 유산은 아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모든 일의 시작인 하느님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 당장 용서하는 것 외에는 아무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매켄지는 대답하지 못 한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나는 턱하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가끔 나쁜 인간들을 볼 때 “죽여야 하는 거 아닐까?”라고도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널 지옥에 보낼거야”했다. 그러면 조금은 분이(?) 풀린다고 할까?

그들은 매켄지를 더 밀어붙인다.

“당신 아이들 여섯 중 둘 정도는 영원한 불 속에 보내버리는 게 어때요? 당신은 그들이 속을 썩인다고 미워했잖아요.”

그러자 매켄지는 펄쩍 뛴다.

“대체 무슨 말씀인가요? 그렇다고 내 아이들을 지옥으로 보내다니요.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혹 지금 좀 비뚤어졌어도 나는 그들을 사랑합니다. 더 기다려 줄 거에요.”

그러자 그들은 슬픈 얼굴로 말한다.

“매켄지, 나는 당신을 이해해요. 그리고 당신은 내가 당신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 자녀들인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을 알지요? 그런데 당신들은 내게 그렇게 기도하잖아요. 저들을 지옥에나 보내달라고.”

이 구절들이 나를 변하게 했다.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 해도, 그들이 지옥에 간다고 하면 왠지 고소하고 통쾌했던 모든 마음은 사라지고 지금은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내내 생각하지만 신앙의 길은 고되다. 사이다의 길이 아니라 고구마의 길인 듯하니까.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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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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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리라. 송가로 그분을 칭송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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