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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이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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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지인과의 만남에서 금기시되는 대화의 소재가 있다. 정치 이야기다. 보수냐? 진보냐? 어느 정당을 지지하나? 한 명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 그때부터 이념 논쟁은 시작된다. 그래서 보통 이럴 때 논쟁을 피하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하는 말이 “난 중도야, 난 무당 층이야, 지지하는 정당 없어”다. 이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념 관련 발언이 나오면 숨었던 논쟁은 다시 고개를 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이념을 강조하며 ‘공산 전체주의’, ‘반국가 세력’ 등의 말을 언급하자 격한 이념 논쟁이 일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를 국민 갈라치기로 규정하고 총공세에 나섰다. “이념을 내세워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간다”, “공산주의를 사냥하던 철 지난 매카시즘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확고한 국정 철학을 보여줬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내년 총선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8·15 경축사에서 시작된 대통령의 이념 공세가 어떤 맥락에서 언급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건 없다. 다만,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 등 일련의 사안과 대통령 측근이 전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탈냉전에서 신냉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국제질서 재편 상황에서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제대로 작동시켜 민생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국가 이념을 언급했다는 설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 보수도 진보도 아닌 헌법을 최상위 가치로 놓는 법치주의자로 알려졌다.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정체는 ‘민주공화국’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다. 그럼에도 여태껏 한국 정치사에서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과 정치권의 이념적 발언은 세대 간, 지역 간, 계층 간 분열과 갈등, 증오를 낳았고 정치 혐오와 냉소의 실마리가 됐다.

대통령과 정치권의 이념적 발언은 배경과 목표가 명확하고 국민을 위한 비전이 담겨야 한다. 이념은 국가가 정치적으로 지향할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차원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정쟁만을 일삼는 과정에서 나온 대통령의 이념 발언은 정치적 편 가르기,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으로 발언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념 논쟁이 나올 때마다 국민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이념이 밥 먹여 주느냐?”이다. 이념 논쟁으로는 법과 정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념이 다른 사람도 목표는 같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이다. 국민들은 삶의 현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더 나은 삶의 기회가 보장되는 보수와 진보의 공존을 원한다. 이를 위해선 상식과 합리, 균형을 아우르는 지혜가 필요하다.

종교에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이념 논쟁들이 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은 이념이 아니라고 늘 강조한다. 성직자 등 교회 종사자들이 우파든 좌파든 중도든 어떤 사상이나 이념에 빠진다며 그건 복음을 정당이나 사교 모임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무익하고 소모적인 양극단의 이념 논쟁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가 모두 필요하지만 날아가는 방향은 같다. 자신의 이념에 사로잡혀 상대를 무시하고 짓밟아서는 안 된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도 말년에 보수화됐다며 일부 정치 집단의 비난을 받았다. 민주화 이후 추기경이 어느 한쪽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추기경은 당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했다. 종교와 이념, 계층도 구분하지 않았다. 좌도 우도 서로가 있어야 양 날개로 높이 날 수 있고 양어깨로 고통의 짐을 분담하며 멀리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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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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