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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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대성당 (3) 천국의 문

로마의 휴일 _ 로마의 성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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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대성당 회랑 오른쪽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기마상

서기 313년.

고구려 미천왕이 한반도에 남은 마지막 한사군(漢四郡)인 낙랑을 멸망시켜 대륙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한 해다. 호동왕자를 사랑했던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던 그 해, 서양에서는 그리스도교에 꼭꼭 문 닫아 걸고 문단속하던 로마 제국의 자명고가 찢어졌다. 로마는 그렇게 ‘처음으로’ 빗장을 풀었다. 낙랑이 고구려에 문을 활짝 열었듯, 로마가 교회에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서기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Gaius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306∼337 재위)는 ‘밀라노 칙령’(Edictum Mediolanense)을 통해 공식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믿어도 좋다는 ‘종교 자유’를 선언한다.

박해시대에 몰수되었던 교회 재산이 모두 반환되었고, 신앙생활을 속박하던 모든 법률은 폐지되었다. 물론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신앙생활 환경이 조성된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후 내놓은 각종 정책은 그리스도교 육성책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과연 신앙에 몰입했는지, 혹은 정치적으로 신앙을 이용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지만, 그의 정책으로 인해 교회의 부흥 이 찾아온 것만은 확실하다. 황제는 직접 나서서 국가나 개인이 빼앗아 가지고 있던 교회 재산을 아무 대가 없이 반환토록 했다. 경매를 통해 교회 재산을 사들인 이에게는 국가가 직접 배상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또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각종 특권을 주었다. 성직자에게 지방세를 면제해 준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신앙인들을 박해하고 수많은 범법자를 살해하는데 사용됐던 글래디에이터(Gladiator) 경기, 즉 검투사 경기 또한 사라졌다. 예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십자가 처형 방식도 종적을 감췄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세울 것을 결심한 것이다. 일명 콘스탄티누스 황제 대성당이라고 부르는 초기 성 베드로 성당은 이렇게 349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대성당은 1000년 동안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순례하는 성지가 되었다. 하지만 노후화가 심해지자 재건축에 대한 논의가 14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마침내, 1505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대성당 재건축 결정을 내렸고, 1506년 첫 삽을 뜬 이후 120년 동안 교회는 모든 역량을 쏟아부으며 베드로 대성당 건축에 매달렸다. 율리우스 2세 때부터 시작된 계획은 공식적으로는 1626년 우르바노 8세 교황 때에 완료되었다. 무려 20여 명의 교황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공을 들인, 가톨릭 교회 최대의 사업이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대성당의 위용은 대단했다.
 
2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성년에만 열리는 성년의 문(Porta santa).

우선 대문부터 으리으리하다. 대성당에는 모두 5개의 문이 있는데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이 죽음의 문(Porta della Morte)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례미사 때 유해가 통과하는 문이다. 1950년 희년(禧年)을 맞아 기획되었는데, 현대 조각가 자코모 만추(Giacomo Manzu)가 1964년 완성했다. 예수, 성모 마리아, 성 베드로, 성 요한 23세, 성 스테파노의 죽음이 묘사되어 있다. 그 옆에 있는 문은 선과 악의 문(Porta del Bene e del Male)이다. 루치아노 민구치(Luciano Minguzzi)가 1977년 완성했다. 청동문 오른쪽에는 비둘기를 포함한 선(善)을 나타내는 상징물들이, 왼쪽에는 매를 포함한 악(惡)을 나타내는 상징물들이 부조되어 있다.

가운데 있는 문은 필라레테 문으로 불리는 중앙문(Porta del Filarete)인데, 대성당 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필라레테'라 불린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아베를리노(Antonio di Pietro Averlino)가 1445년 완성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베드로, 바오로에 대한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중앙문 오른쪽에 위치한 네 번째 문이 성사의 문(Porta del Sacramenti)이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이 대성당에 출입할 때 들어가는 문인데, 7성사의 내용을 담아 베난치오 크로체티(Venanzio Crocetti)가 1965년에 완성했다. 왼쪽에는 세례, 견진, 고해성사가, 오른쪽에는 병자, 성품, 혼인, 성체성사가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마지막에 있는 문이, 2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성년에만 열린다는 그 유명한 성년의 문(Porta santa)이다. 천국의 문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이 문을 개방한다는 것은 천국의 문을 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749년에 나무로 제작되었으나, 1949년 비코 콘소르티(Vico Consorti)가 청동으로 교체하여 1950년 스위스 교회에서 기증했다. 원래는 100년마다 문을 열었으나 그 간격이 50년으로, 다시 25년으로 줄었다.

자! 이제 문을 열고 베드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자. 

공간 자체가 주는 위압감이 대단하다. 규모 면에서는 세계 최대. 길이 221m, 높이 141m의 공간 안에 거대한 성인 조각상들이 좌우로 사천왕상(四天王像)처럼 도열해 있다. 최대 6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 내부에는 500개에 달하는 기둥과 400개가 넘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44개의 경당에 1300개에 달하는 모자이크 그림들이 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성수대 하나만 봐도 대성당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대성당 입구에 들어선 후 바로 만날 수 있는 ‘아기 천사 성수대’(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성상과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 성상 아래에 있다)의 아기 천사 높이만 2m에 이른다. 가톨릭 교회는 그렇게 하느님에 대한 마음을 성전 건축에 최대한 담아내려 했다.
대성당 입구에 들어선 후 바로 만날 수 있는 ‘아기 천사 성수대.’

그렇다면 대성당 내에서 가장 공을 들인 장소는 어디일까.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모신 곳 위에 자리한 교황 제대, 발다키노(Baldacchino, 묘지나 제단 위를 돌로 지붕을 만들어 덮어 놓은 것) 그리고 그 위에 펼쳐져 있는 돔이다.

저 멀리, 베드로 대성당의 교황 제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글 _ 편집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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