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장수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으로 오래 사는 것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객관적으로 몇 살을 살았다는 것보다는, 주관적으로 행복하게 오래 살았다고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얼마를 살았느냐보다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확인해 보는 실험이있다. 청년과 노인을 대상으로 각각 눈을 감고서 1분을 마음 속으로 센 후 1분이 다 되었다고 생각되면 손을 들라고 말한다. 이때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1분보다 훨씬 빨리 손을 든다. 반면 나이든 사람들일수록 대부분 1분이 훨씬 지나서야 손을 든다고 한다.
만일 이 실험 결과가 사실이라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보다 심리적으로 시간의 속도를 더 빠르게 느낀다. 반면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심리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더 천천히 느낀다.” 언뜻 이 말은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즉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는 말과 대치되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실 같은 말이다.
이 실험의 결과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심리적인 시간보다 실제의 시간이 더 길다.” 이 말은 실제의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년들은 실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반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심리적인 시간보다 실제의 시간이 더 짧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실제의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인들은 실제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을 보내며 사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뇌의 적응성 때문이다. 뇌는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면 그 자극에 집중하고 그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때 정보처리를 위한 에너지가 많이 소비될수록 실제보다 심리적으로 시간이 많이 흐른 것처럼 느낀다. 즉 새로운 것에 대해 긴장하고 적응하려 할 때 뇌는 수많은 뇌세포의 활성화로 인해 시간이 많이 흐른 것처럼 느낀다.(실제로는 시간이 그만큼 흐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반면, 뇌가 일정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그 자극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지고 더 이상 처리할 필요가 없는 자극으로 여긴다. 즉 적응하는 것이다. 뇌가 적응모드로 바뀌면 정보처리에 대한 에너지가 줄어들고 실제보다 시간이 덜 흐른 것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것이 없고 늘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시간이 덜 흐른 것처럼 느껴진다.(실제로는 시간이 더 많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었어도 세월의 속도를 늦추는 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방법은 실제로 얼마를 살았느냐와 상관없이 우리가 오래 사는 비법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루하루를 새롭게 사는 것이다. 매일의 일상이 새로운 정보로 가득찬다면, 우리의 뇌는 그 정보를 새롭게 해석하기 위해 활성화되며, 동시에 시간의 간격은 주관적으로 늘어난다. 결국 심리적 시간이 물리적 시간보다 빨리 흐르게 되어 결과적으로 같은 시간을 공유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산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4,42)
이 예수님 말씀은 영성심리적으로 하루하루를 새로운 방식으로 살라는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제의 같은 사람이라도 오늘은 다른 사람일 수 있다. 같은 사람을 새롭게 만날 수 있고, 같은 일상을 새롭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는 깨어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의 뇌가 일상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의 뇌는 항상 같은 정보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기 위해 에너지가 끊임없이 사용된다. 따라서 매일의 삶은 늘 새롭고 깨어 있는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 영성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그 날과 그 시간’이 언제 오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언제 오더라도 늘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일을 새롭게 사는 것이야말로 깨어있는 길이며 인생을 오래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글 _ 박현민 신부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