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섬 제주도의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가 ‘무사증 제도’이다. 이란, 시리아, 이집트 등 무사증 불허 23개 국가를 제외한 모든 나라 사람이 비행기 표만 있으면 제주도에 30일간 머물 수 있다. 이 제도 덕분에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170만 명 넘게 제주도를 찾아 관광산업이 호황을 이루었다. 이들 중 일부는 ‘30일 이내에 떠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제주도에 남아 ‘미등록 외국인’, 즉 ‘불법체류자’가 된다.
나오미센터는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외국인을 위하여 ‘외국인의료공제회’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한국인 택시 기사 한 명이 가입을 신청하려는 외국인 네 명을 데리고 찾아왔다. 카드를 만들기까지는 접이식으로 만든 종이카드를 기록하고, 휴대폰으로 증명사진을 찍어 인쇄해 오려 붙이고 유효기간 도장을 찍어야 하는 등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된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택시 기사에게 절차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신경 쓰지 마세요.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동네 젊은이들하고 함께 나오면, 제가 안내도 해주고 아는 만큼 통역도 해주며 천천히 여유 있게 다니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 마을에 사는 젊은이는 이 사람들뿐입니다. 마을 어르신들의 농사 일꾼이기도 하고 제 단골손님이기도 하지요. 없어서는 안 될 우리 동네 젊은이들입니다”라고도 했다. 택시 기사는 ‘외국인’이나 ‘불법체류자’라는 말 대신 ‘우리 마을 젊은이’라고 불렀다. 마치 제주 공동체 괸당(가깝고 먼 친인척을 뜻하는 제주어)의 구성원을 부르듯 말이다.
제주도 농업 가구 중 70가 연간 수입이 1000만 원도 안 되는데, 올봄 농사 파종기에 농촌 하루 일당은 15만 원까지 올랐다. 작은 밭을 일구는 할머니들은 인건비가 너무 비싸 일꾼을 쓸 수가 없었다. 할머니들의 이런 상황을 눈치챈 미등록 외국인 몇 명이 나서서 한두 시간씩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정부가 특별 단속반을 만들어 ‘불법체류자’를 검거하겠다고 이곳저곳을 수색하며 다니고 있는 와중에 ‘불법체류자’들은 일손 놓고 있는 할머니들의 농사일을 거들고 돌보는 ‘농촌 봉사’를 한 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지난 7월 초 프랑스는 외국인 소요 사태로 시끌시끌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중에 나는 할머니들 밭에서 ‘제주 수눌음(제주도식 품앗이)’을 실천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외국인으로 인한 소요 사태에 대한 걱정보다는 외국인과 지역주민이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한 단계 발전시켜 우리 사회의 모범이 되는 사회통합을 이루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농업과 어업이 생존할 수 없다는 말까지 들린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은 ‘불법체류자’이니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유는 단지 그들이 ‘30일 이내에 떠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농어촌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외국인에게는 ‘30일 이상’ 머물 수 있게 하는 법이 마련된다면, 우리 농어민도 좋고 우리나라에서 살고 싶어 하는 외국인에게도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김상훈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