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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그대 외로우시면 /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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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집을 마련한 지 5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SNS도 끊고 거의 두문불출하는 나에게 묻곤 했다. “외롭지 않나요? 뭐하고 지내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한다. “외로운지 생각해보지 않아 모르겠고요. 죽을 준비를 해요.”

대개의 반응은 화들짝 놀라는 것이고, 덧붙여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고 일장 훈계를 하거나 이 여자가 자살이라도 하려는 걸까 기색을 살핀다. 하지만 내 얼굴이 명랑한 것을 보고 대개는 갸우뚱 거린다. 나는 가끔 망설인다. 이 사람에게 나는 사춘기 이후로 한번도 죽음을 잊은 적이 없다는 말을 해야 할까. 자살 말고 ‘죽음’말이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내일 죽는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하고 말이다. 그것은 내 선택에 도움을 주었다. 가끔 나쁜 선택을 했던 것은 대개 내가 “정신없이 바빠”하는 말을 달고 살았을 때였다. 내가 정신없이 바빠 죽음조차 잊고 살았던 날에 나는 나빴다. 내 삶도 함께 헛되어져갔다.

지리산 중턱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몇 가지 세부적인 규칙을 세웠다. 함부로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대문을 높이 세우고 인터폰을 달았다. 시골에 이사 오고 나니 서울과는 아주 다른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건 아무나 내게 “집에 놀러 가도 돼요?” 하고 묻는 일이었다. 도시를 대입해 생각해보면 이건 참으로 무례한 일이었다.

가끔 벨을 누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구세요?” 물으면 “팬인데요, 멀리 OO에서 왔어요”했다. 그가 멀고먼 남극에서부터 왔다 한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일까. 나는 이제 나를, 내 공간을 내 사적 영역을 소중히 하며 말년을 보내고 싶었다.

사람들은 내가 개나 고양이 10마리랑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나무 10그루랑 있으면 외로울 거라 짐작한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 식물들도 반려동물과 마찬가지다. 바위 열 개랑 같이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다. 요점은 하느님이 지으신 것들과 있으면 외롭지 않다. 그러나 7성급 호텔이라 해도 사람이 만든 그곳에 혼자 있다면 우리는 외롭다. 이 자연 속에서 나는 고독하나 혼자는 아니다. 하느님이 지으신 이 자연은 인간들이 에덴으로부터 잃어버렸던 낙원의 신성을 우리에게 나누어 준다. 인간만 빼고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신의 모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왜 내가 도시에서 그렇게 늘 어울려 있었으면서 외로웠는지 깨달았다. 우리 서로는 서로에게 자신이 잃어버린 신의 모상을 찾으려고 북적이는 저잣거리로 나서지만 매번 더 상처받아 돌아오곤 했었다. 그 인간도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을 찾으러 나왔기에 목마른 두 인간, 모두가 목마른 군중, 모두 물을 찾아 헤매이고 있다는 확신만 받고 돌아오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이렇게 고독 속에서 사람 간의 거리를 지켜나가자 나는 덜 외롭고 더 사교적이 될 수 있었다. 이 달콤한 고독을 뚫고 나가서 만나는 사람이니 소중했던 것이다. 그러니 더 최선을 다할밖에. 그대 외로우신가. 사람을 끊고 자연에게로 가시길. 하느님이 지으셔서 그 모상을 그대로 조각보처럼 나누어 가진 숲이나 들 혹은 바다에서 머물러보시길. 그 퍼즐 조각 속에서 우리가 온전한 그분의 소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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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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