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연구소 ‘Hello 대한민국, Hello 교황청’ (5) 교황 방한(訪韓), 평화와 희망의 미래
폰트 작게폰트 크게인쇄공유
×
한홍순(토마스) 전 주황교황청 한국대사
성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가톨릭교회가 이야기하는 평화에 대해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 비로소 회복되고 견고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교회의 평화관은 종말론적이면서 내면적이고 정치적이다. 다시 말해 교회의 평화는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 현재성’을 지닌 동시에 아직 이뤄지지 않아 장차 완성될 ‘종말론적 미래성’ 역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교회의 평화는 하느님의 뜻에 따른 질서를 추구하며 하루하루 노력을 통해서만 이룩된다는 측면에서 내면적이고, ‘질서의 평온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측면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질서의 평온함은 국가 공동체 구성원은 물론, 국제 사회를 구성하는 국가 간 관계가 정의를 토대로 이뤄지는 것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교회는 평화를 정의의 열매로 보고, 참된 정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한다고 가르친다. 사랑이 없으면 평화도 없다.
교황이 해외로 떠나는 사목 방문은 세계 곳곳의 그리스도인들과 타 종교 신자들, 백성들을 찾아다니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바탕을 둔 정의와 평화를 전하는 자리다. 교황 사목 방문이 성사되려면 필수 조건이 있다. 방문국 교회와 정부의 공식 초청이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폴란드 방문이 당시 공산 정권의 거부로 실현되지 않은 것처럼, 교황이 의지가 있더라도 초청하지 않으면 사목 방문은 불가하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역시 재위 기간에 소련 방문을 추진했지만, 러시아 정교회의 반대로 불발된 바 있다.
현재 의미의 외국 사목 방문을 처음으로 시작한 교황은 앞서 말한 성 바오로 6세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4년 성지 예루살렘을 방문해 콘스탄티노플의 정교회 아테나고라스 1세를 만나 1054년 이뤄진 상호 파문을 취소했다. 교황이 이탈리아 밖으로 나간 것은 프랑스 혁명 전쟁 중에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로 끌려간 비오 7세 이후 150년 만의 일이었다. 성 바오로 6세가 열어 놓은 이 새로운 길은 후임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등이 전 세계를 다니며 사목 활동을 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 가운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폴란드 사목 방문이 특히 유명하다. 그의 폴란드 방문은 폴란드를 넘어 모든 동유럽 국가와 소련에서 공산주의를 붕괴시킨 정치적 변화의 정신적 원동력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성사 여부가 관심받았다. 교황 방북은 한국 백성 모두를 위한 하느님의 축복이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복원할 수 있는, 핵폭탄보다 강한 힘이 있다. 실제로 북한의 김정일은 이 후폭풍이 무서워 1991년 김일성이 추진하던 교황 방북을 무산시킨 바 있다. 김정일은 교황 방문으로 북한 내 그리스도교인이 증가해 사회 안정을 해칠 것이라 두려워했다.
교황 방북은 성사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반드시 성사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 날과 그 시간을 아직 모를 뿐이다. 2027년 서울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WYD)는 변화를 이끌 절호의 기회다. 교황님이 방한하실 것이고, 그때 북한 청년들을 초대할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특히 교회 재건을 위한 인적 자원을 양성하고 물적 자원을 준비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길 기도하자.한홍순(토마스)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