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목계반점 (4)
“♩♬♬~.”
탕수육을 가지러 올 테니 포장을 해달라는 전화 주문이 들어왔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아 전화를 했는데, 핸드폰 컬러링으로 어찌나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흐르던지 상대방은 한참 동안 받지 않았지만 전화기를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곤 받는 목소리….
“네! 지금 가고 있는 길입니다.”
음악이 멋져서 일까. 목소리와 억양도 사뭇 일반 사람과는 달리 특별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잠시 후 하얀 승용차가 들어왔다.
옆 좌석엔 딸인 듯 작은 꼬마공주님을 대동하고선 말이다.
창문 넘어 음식 건네주고 인사를 하고선 떠나는 차의 뒤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도 참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간다.
뭘 하는 사람일까?
탕수육을 들고 가는 곳엔 예쁜 아내가 기다리고 있겠지….
참 좋다.
휴게소나 마트의 공중화장실에 가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란 글귀가 한참 유행하던 적이 있었다. ‘君子必?其獨也.’(군자필신기독야) ‘홀로 있을 때의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류시화 시인이 영감 노트에 수록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공부하는 자리하나 깨끗이 할 줄 모르면 큰 사람이 못 된다”라는 뜻으로 예전엔 서당에서 가르치던 글귀였다고 한다. 그런 글귀가 우리나라 화장실에서 널리 사용되는 글이 되었다.
식당도 마찬가지이다. 식사하고 계산을 마친 후 손님이 다녀간 자리를 치우러 가보면 그분이 어떤 인격을 갖추신 분인지가 보인다. 천차만별의 사람이 다녀가는 자리에 머문 자리가 기억에 남고 좋은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치울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기가 막혀서 어질러 놓은 자리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때도 있다. 그런 손님은 에이구 머니나…. 또 올까 무섭다.
몇 달전 서울에서 친구들과 대형 갈비 집에서 식사를 했다. 맛도 좋고 서비스도 좋아서 즐겁게 식사를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고성이 오갔다. 아주 멋지게 잘 차려입은 가족이 고기를 자르던 여직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유는 소고기가 다 타도록 뒤집어 주지 않아서 먹지 못하게 됐고 급하게 뒤집다 양념이 비싼 옷에 튀었다고 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손님에게 훈계를 듣던 우리 집 딸아이 정도의 여직원은 그만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한다. 급기야 메니저를 불러 세탁비를 받고 새로운 갈비를 구워 먹고야 고성이 사라졌다. 함께 먹던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그 손님들이 나가자 여기저기에서 불편했던 속내를 한마디씩 했다. ‘고기가 타면 본인들이 뒤집으면 안되냐.’ ‘자기 혼자 이 식당에서 밥 먹냐.’ 서울이라 이런가 하는 무정한 마음에 나는 밥만 조용히 삼켰다.
목계반점 단골 어르신 중에 한 분은 자신과 가족이 드시고 남은 음식을 모두 한 그릇에 잔반을 담아주시고 사용한 그릇과 수저도 모두 한꺼번에 모아서 놓고 가신다. 괜찮으니 그냥 두고 가시라 해도 이렇게 하면 치우는 사람이 얼마나 편하겠냐 시며 자신이 드신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시고 가신다. 나는 상을 치우면서 작은 짜장면 한 그릇을 드시면서도 나중에 치우는 사람을 배려하는 어르신의 큰마음이 느껴졌다.
또한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자신이 사용한 휴지는 다른 사람이 만지면 안 된다며 휴지통에 깔끔하게 버리고 가는 손님도 늘고 있다. 남을 위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모습에서 나도 다른 식당에 가면 그렇게 해야지 하는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가신다. 생선을 쌌던 종이에는 비린내가 나고, 꽃을 싼 종이에서는 향기가 나듯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향은 드러나고야 만다. 나는 어떤 향기를 지닌 사람인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예쁜 공주님을 옆에 태우고 나타난 그 손님을 마중하면서, 머문 자리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해 준 그 손님에게 감사 인사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