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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천이와 벅수

[월간 꿈 CUM] 벼리마을에서 온 편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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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직원 한 명이 저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국장님~ 혹시 ‘벌천이’라는 말뜻을 아세요?”

벌천이라~,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제가 “아니요, 모르는 말인데요”라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그러면 벅수라는 말은 들어보셨어요?”라고 재차 질문을 합니다. 아~ 벅수라~, 이 단어 역시 제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저는 또다시 “아니요, 이 말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인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질문을 제게 던졌던 직원이 주변 사람에게 다 물어봐도 벌천이와 벅수에 대해 들어봤다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본인 주변에 이 말뜻을 아는 사람은 오직 본인 가족 뿐이라는 겁니다. 

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벌천이’는 ‘일을 야무지게 못하는 사람, 좀 부족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벅수’라는 말뜻도 벌천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저도 우리 직원에게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고, 궁금하기도 해서 말뜻을 찾아보았습니다. 검색결과 경상도 사투리로 벌천이는 일을 야무지게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벅수는 멍청이라고 불리는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경상도 사투리라고 확인했습니다.

어릴적에 우리가 흔히 바보 멍청이라고 친구를 낮추어 놀리던 단어의 의미가 경상도 사투리로 벌천이와 벅수라는 단어의 의미인가 봅니다. 이렇게 오늘도 직원 덕분으로 새롭게 배워봅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직원들 본인이 서로 벌천이라고 하고 벅수라고 합니다. 본인이 벅수할테니 00 직원은 벌천이를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0벅수 부장이 되고, 0벌천이 팀장이 됩니다. 왜 그렇게 서로 호칭을 하냐고 물었더니 본인들이 많이 부족하고 멍청이라서 벌천이고 벅수라는 답을 해옵니다. 그러면서 한바탕 웃어 보입니다. 아~ 정말 순수한 영혼입니다. 이 순수한 영혼의 직원들을 뒤로하고 출근하는 우리 이용자분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기관 출입구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장애인 이용자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중에 이용자 한 분이 제 앞으로 다가옵니다. 저를 빤히 쳐다 봅니다. 그러더니 “국장님, 흰머리가 왜이케 많아요~ 늙어서 그래요? 늙지 마세요, 제 마음이 너무 아파요”라고 속사포처럼 이야기하고 저를 다시 한번 쳐다 보고는 제가 답변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작업장으로 휙 들어갑니다. 순간 제 머리와 마음은 알 수 없는 멍~ 한 상태에 멈춰버립니다. 시선만이 작업장으로 들어가는 이용자분의 발걸음을 뒤쫓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이야기합니다. “네, 000님, 고마워요, 제가 늙지 않도록 열심히 해볼께요”라는 말이 머리와 입가에 맴돕니다.

문득 조금 전 직원들과 얘기했던 벌천이와 벅수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용자분이 저에게 흰머리가 왜이케 많으냐고~ 늙지 마시라고, 본인 마음이 아프다고 한 이야기를, 정작 저는 제 부모님에게는 한 번도 표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제 자신이 정말 바보 멍청이가 된 기분입니다.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에서 몇 년 함께 생활한 이용자분이 저에게 표현해주신 진심을 반백년 이상 함께한 제 부모님께는 한번도 표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새롭게 배웠다는 감사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도 정말 직원분들과 이용자분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깨닫게 되는 감사한 날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많이 부족한 벅수이고 벌천이라는 생각에 입가에 빙그레 웃음이 흐릅니다.

이미 2천 년 전에 벅수이고 벌천이셨던 분을 바라봅니다.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파란색이고 구름은 솜사탕처럼 탐스러운 모습입니다. 하늘과 구름 사이로 2천 년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들었다 놨다 하셨던 벌천이와 벅수의 아이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느껴보기 위해 크게 호흡까지 해 봅니다. 그때 “국장님~”하고 누군가가 저를 부릅니다. 돌아다보니 아까 그 이용자분 입니다. “국장님~, 아까 늙었다고 해서 기분 나빴어요?”라고 저에게 묻습니다. “아니요, 000님, 기분 하나도 나쁘지 않아요, 저를 생각해서 얘기해 주신 건데, 제가 왜 기분이 나쁘겠어요, 000님, 감사해요”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해봅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국장님~, 사랑해요” 하고 작업장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여러분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마태 23,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에서 함께하는 직원들의 모습, 하나같이 본인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벌천이와 벅수들입니다. 우리를 위해 벌천이와 벅수로 한 생을 살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입니다”(마태 23,12)
 
글 _ 이재훈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사무국장)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신앙 안에서 흥겨운 삶을 살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년 가까이 가톨릭 사회복지 활동에 투신해 오고 있으며 현재 안양시장애인보호작업장 벼리마을 사무국장이다. 하루하루 매순간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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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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