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교회 전례력으로 위령 성월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하고,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 묵상한다.
요즘은 웰빙(well-being)처럼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가톨릭교회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 세상에서의 순례를 마치고 천상의 영원한 삶으로 옮아가 부활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한다.
몇 년 전 레지오 마리애에서 같이 봉사하시던 자매님이 암으로 돌아가시고, 건강하시던 시아버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나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심하게 싸여 있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고, 거기서 성묘성당을 순례하였다.
순례 마지막 날 이른 새벽 숙소를 출발, 예루살렘 성 다마스쿠스 문을 통과하여 아랍인 시장(바자르) 골목을 지나 성묘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문을 넘어서 골고타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가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현장으로 전해지는 골고타 바위가 보존되어 있다. 그 골고타 바위에서 내려오면 정면 바닥에 길쭉하게 깔려 있는 대리석이 있는데,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눕히고 향유를 바르고 염했다는 성유석이다. 그리고 미리 예약한 미사 시간에 예수님께서 묻히시고 부활하신 곳 ‘에디큘라’(그리스도의 무덤)로 들어가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 몇 명씩 들어가 무릎을 꿇고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던 돌판 위에 손을 얹고 잠시 죽음을 묵상했다. 이 성당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이루어진 가톨릭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현장이자 성지이다.
나는 이곳을 순례하고 예수님의 무덤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와서야 비로소 죽음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 죽음과 부활의 과정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언젠가 맞이해야 할 죽음이 무서운 형벌이 아니라, 이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는 영원한 생명의 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8월 말에 친정 오빠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원래 지병이 있었지만 건강히 잘 지내셨는데 갑자기 혈액암이 생겨 뇌에 전이가 되면서 쓰러지셨다. 수술을 마치고 그 힘든 항암치료를 이기지 못하고 딱 두 달 만에 돌아가셨다. 임종 바로 전날 ‘베네딕토’로 세례와 병자성사를 받으셨다. 지금 친정 식구들은 말할 수 없는 황망함과 헛헛함으로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오빠가 하느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슬픔을 이겨내고 있다.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하느님을 의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매일의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언젠가 그 마지막 때가 오면 후회 없이 하느님께로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집회 48,11)
정금원 스콜라스티카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