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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겸손 지닌 시대의 위대한 현인

한국교회사연구소 ‘Hello 대한민국, Hello 교황청’ (6) 교황님과 나의 30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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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휴(암브로시오) 전 교주교황청 한국대사

2022년 마지막 날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들었다. 황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급히 로마로 향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주례한 장례 미사에 참여했다. 허전함을 추스르며 집에 돌아오니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보낸 성탄 카드가 도착해 있었다. 선종 직전 보내신, 성탄 때 드린 인사에 대한 답장이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과의 인연은 1991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었을 때다. 당시 나는 독일 뮌헨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 추천으로 라칭거 추기경의 사제 수품 40주년 미사에 참석했다. 교황이 되는 라칭거 추기경을 만난 첫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대담집 「신앙의 현황」을 번역하겠다고 요청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회 상황에 대한 라칭거 추기경의 혜안을 한국 신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어서였다. 번역 허락을 정식으로 받은 건 로마로 순례를 가서 만났을 때였다. 한국 신자들을 위한 인사말을 써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그렇게 교황의 대담집을 번역해 한국에 내놓았다.

교황과의 다음 만남은 1999년 8월, 휴가차 독일을 찾으셨을 때 이뤄졌다. 당시 주요 화제는 교회 일치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다. 특히 ‘공의회 정신을 빙자한 신앙과 전례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교황은 1975년에 공의회의 문제를 간파한 바 있다. 교황은 “지난 세월에 교회는 몹시 부정적으로 흘렀다”며 “이러한 과정은 전반적으로 공의회를 끌어다 붙였고, 그럼으로써 공의회의 이름을 더럽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다시금 공의회 문헌에 충실하자”고 당부했다. 결국 교회와 공의회에서 이룬 개혁의 목표는 “교리를 순수하고 완전하게 전수해 줄이거나 일그러뜨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교황의 대담집 「이 땅의 소금」을 번역할 때도 직접 서문을 써서 보내주셨다. 서문을 통해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대한 교황의 깊은 관심을 알게 됐다. 교황은 한국 교회에 대해 △자생적으로 형성된 교회 △수많은 순교 성인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신앙 역사를 가진 교회 △독재 치하에서 인권과 자유의 보루 역할을 한 교회 △세계화 과정에 세속주의 도전을 받는 교회로 평가하셨다. 아울러 교황은 한국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증언하고 진리에 이르는 자유를 추구하며 때로는 순교의 길을 택하면서까지 헌신할 때에만 교회는 신뢰받고 ‘이 땅의 소금’이 된다”고 당부했다.

이후에도 교황이 선종할 때까지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이 인연 덕에 교황이 되신 후 나는 언론의 관심을 받았고, 교황님의 제자 모임에 참석하거나 대통령 특사로 알현하기도 했다. 주교황청 한국대사로 임명된 직후 찾아뵈었을 때는 이례적으로 30분 넘는 시간을 내어주시며 강복해주셨다. 이때가 마지막 알현이었다.

곁에서 지켜본 교황은 지혜와 겸손을 지닌, 이 시대의 위대한 현인이었다. 그와의 만남은 나의 가치관,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신앙과 학문ㆍ교양ㆍ문학ㆍ예술에 대한 조예까지, 모두 한 몸에 구현한 인물이었다. 30년 이상 시대의 현인과 교류한 것. 이는 내게 더 없는 행운이었다.

정리=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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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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