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 기자 동행 취재기
[앵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박현동 아빠스를 비롯한 한일탈핵평화순례단이 최근 일본 후쿠시마현에 다녀왔습니다.
순례에 동행한 이학주 기자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어서 오세요.
▶ 안녕하세요
▷이번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현장까지 다녀오신 건가요?
▶ 아닙니다. 사고 났던 제1발전소까진 당연히 위험해서 가지 못했고요.
대신 발전소가 위치한 행정구역인 후타바정에는 다녀오기는 했습니다.
제가 발전소와 가장 가까이 갔을 때는 불과 4km 거리에 있었습니다.
정은 우리나라로 치면 읍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 후타바정은 방사능 위험 때문에 2021년까지도 전역에 사람이 살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부터 다시 주민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했지만 극히 미미한 숫자만 복귀했습니다.
2020년 여론조사를 보면, 주민 중에 불과 10만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 그런 곳에 가셨다니 떨리셨겠네요. 직접 보고 온 풍경은 어땠나요?
▶ 한마디로 말하자면 희한한 풍경이었습니다.
집들은 유령도시처럼 하나같이 폭격을 맞은 듯 반파된 상태였습니다.
쓰나미와 지진으로 망가진 데다 방사능 때문에 사람들이 살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죠.
집안에는 전에 살던 사람들이 썼을 물건들이 그대로 먼지 쌓인 채 뒤섞여 나뒹굴었습니다.
정원 역시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아 사람 키만 한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그런데 기차역과 관청은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새것처럼 말끔했습니다.
▷ 왜 기차역과 관청만 멀쩡하게 지어진 것일까요?
▶ 정부에서 주민들이 돌아올 것을 대비해 새 단장한 것이었습니다.
후타바정이 동일본 대지진과 핵사고를 이겨내고 부흥했다고 홍보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마을 중간 중간에 검은 포대들이 잔뜩 쌓여 있는 걸 보았는데요.
다름이 아니라 방사능에 오염된 흙과 풀 따위를 담은 것들이었습니다.
게다가 방사능 오염물을 실은 대형 트럭도 쉴 새 없이 도로를 오가는 것도 봤습니다.
아직 이처럼 위험성이 남았는데도 일본 정부가 부흥 정책을 강행하는 게 당황스러웠습니다.
▷ 후타바정 마을 말고도 다른 곳도 다녀오셨는가요?
▶ 예, 핵발전소로부터 불과 4km 떨어진 동일본대지진·원자력 재해 전승관에 갔습니다.
도쿄올림픽을 앞둔 2020년 9월에 개장한 전시관인데요.
후타바정에 있던 처참한 건물들과 대조적으로 으리으리하고 번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일본 정부의 의중이 강하게 묻어났습니다.
재해 현장 모습과 피해를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핵심은 역시 ‘부흥’이었습니다.
전시물은 10년 간격을 둔 비교 사진 등 그간 후쿠시마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회복했는지 보여주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1970년대 지어져 일본 경제 성장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도 조명하고 있었죠.
심지어 방사능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이들을 밖에서 더 뛰놀게 하라는 권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핵발전소가 얼마나 위험한지, 왜 이러한 참사가 벌어졌는지에 대한 설명과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전승관에서 소풍 온 듯 즐겁게 둘러보는 관람객들을 보며 복잡한 심경이 들었습니다.
‘저들은 무엇을 느끼고 배워갈까. 과연 우리나라는 다를까.’
일본 정부가 핵 사고를 겪고도 다시 핵발전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 역시 다시 핵발전의 길을 걷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참 마음이 불편하고 안타까웠습니다.
▷ 갔던 곳 중에 또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으셨는가요?
▶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북쪽으로 약 5.7㎞ 떨어진 나미에정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다에서 300m 거리에 있는 지진 재해 유적 우케도초등학교를 방문했는데요.
천장과 벽이 무너져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등 대지진 당시 상처가 보존돼 있습니다.
이곳의 별명은 기적의 학교인데요.
대지진 당시 15m 쓰나미가 덮쳐 건물 2층까지 물이 찼는데도 기적적으로 희생자가 1명도 없었습니다.
교장의 빠른 대처로 학생 82명과 교사들이 1.5㎞ 거리의 오히라산으로 피신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지도자의 판단과 자질은 많은 생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핵발전으로 회귀하는 한국과 일본 위정자들의 판단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시민들은 잘 살필 필요가 있겠습니다.
▷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가톨릭평화신문 이학주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