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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눈] 이태원 참사 1주기, 국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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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범했던 일상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또는 연인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이었습니다.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서, 생일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이태원을 찾았습니다. 축제에 함께하고 싶은 외국인도, 직장 동료를 축하하기 위한 직장인도, 그렇게 이태원을 찾은 모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1년 전 10월 29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이 압사로 목숨을 잃는 전대미문의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참사 4시간 전부터 빗발쳤습니다. ‘인파 관리가 필요하다’는 보고가 경찰 윗선에 올라갔습니다. 경고음은 여기저기서 울렸지만 국가는 참사를 막지 못했습니다. 수백 명이 깔리고 다치고 죽고 난 뒤에야 국가가 도착했습니다. 살려달라는 사람들의 비명을 들으며 손과 팔을 잡아당기던 시민들과 현장 요원들은 더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참사가 일어나고 정부주도로 일주일동안 ‘국가애도기간’이 진행되었습니다. 애도기간 정부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습니다. 서울시청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추모시설을 설치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는 명동대성당을 비롯하여 각 종교가 주최하는 추모제에 참석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추모와 애도부터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정부의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정부는 참사를 감추고 숨기고 지우려고만 했습니다. 분향소를 세우려는 유가족들을 막고 끌어냈습니다. ‘시체팔이’ ‘놀러가서 죽었다’는 날선 혐오의 말들이 유가족들에게 쏟아졌습니다. 유가족과 함께하려는 천주교 사제들에게는 ‘종북’이라는 딱지가 붙었습니다. 추모미사에는 입에 담지 못하는 욕설이 날라들었습니다. 참사의 진상을 따지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실 참모들은 ‘웃기고 있네’라며 필담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참사 당일의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과 용산구청장은 그대로입니다. 책임소재를 가리겠다고 시작한 재판도 그대로입니다. 그 사이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일어났습니다. 달라진 것은 목숨보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지내온 유가족들만 달라졌습니다. 9년 전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유족들은 거리로 나왔습니다. 단식농성을 했으며 삭발을 했습니다. 아스팔트 위로 머리를 찧으며 거리에서 행진을 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1년. 국가는 참사도 막지 못하고 슬픔도 위로하지 못했습니다. 국가는 159명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충분한 애도 없이 슬픔마저 막아버린 자리에는 국가에 대한 분노가 있습니다.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유가족입니다.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진정한 사과 없이 유가족들이 지쳐가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럴수록 커져가는 것은 국가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분노일 뿐입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이태원 참사 1주기, 국가는 없었다>입니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159명과 유가족 그리고 생존자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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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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