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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스의 성자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6)

[월간 꿈 CUM] 거룩한 사람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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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 신비를 체험한 성인
비안네 신부는 뛰어난 영성가였다. 비안네 신부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해 무감각한 세태에 대해 늘 아쉬워했다고 한다. 비안네가 살던 당시는 계몽주의가 유행한 시기였다. 18세기 유럽에선 신앙이 폐기되었으며 그 대안으로 이성이 대두되고 있었다.

비안네 신부는 그래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닫아버리는 신학자들을 볼 때마다 탄식했다. “열심히, 착하게 잘 살기만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신앙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비안네 신부는 초자연적 현상들을 매일 접하다 보니,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는 이들이 안타까워 보였다. 비안네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초자연적 사건에 대해서 감수성이 너무 무뎌져서, 우리는 막상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를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기적을 직접 접했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처럼, 우리도 기적을 매일 체험하면서도 막상 마음이 닫혀 그 기적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안네의 신앙은 체험에 바탕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귀로 듣는 체험이 강렬하다 보니 신앙도 그만큼 강해졌고, 그 강한 신앙이 삶으로 배어나온 것이다.

신앙 체험이 강렬해지면서 비안네 신부의 영적 능력도 함께 나타났다. 어느 날 한 젊은 청년이 비안네 신부를 시험하기 위해 회개하지도 않고 거짓 고해를 했다. 눈물 연기도 동반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고해를 듣던 비안네 신부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회개하고 다시 찾아오세요.” 비안네 신부는 청년의 마음을 읽었던 것이다. 놀란 청년이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비안네 신부 앞에 무릎 꿇고 제대로 된 고해성사를 보았음은 물론이다.


자연과 가난을 사랑한 성인
비안네 신부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묵주를 들고 혼자 산책하면서 기도했다. 그는 그 산책 시간을 사랑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자연을 사랑했다.

비안네 신부의 자연사랑은 오늘날 우리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늘날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의 싱그러움을 사랑한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행복해 한다. 하지만 비안네 신부는 소음 가득한 도시에서 탈출할 때 느끼는 그런 해방감의 차원에서 자연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눈만 뜨면 보이는, 어쩌면 식상할 수도 있는 그 자연 속에서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연을 사랑했다. 비안네 신부는 그래서 신자들에게 자주 대자연에 대한 자신만의 명상을 전했다.

비안네 신부는 또한 철저히 가난을 몸으로 살았다. 편안한 잠자리를 거부하고 침대 속의 짚을 일부러 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회개와 성체성사를 강조한 성인 
비안네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자주 모시라고 권고했다.

“성체를 모시십시오. 내 형제들이여 예수님께로 가십시오. 여러분이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초대를 거절하지 마십시오. 죄가 너무 커서 초대에 응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물론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죄가 너무 많아서 주님께 나아갈 용기가 없다고 말해선 안됩니다. 몸이 아픈데 치료를 거부하거나 의사를 부르지 않겠다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비안네 신부는 또 회개를 강조했다. 그가 지옥불의 무서움에 몸서리치며 한 말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죄의 무감각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어떤 사람이 큰 장작더미를 차곡차곡 쌓으며 ‘당신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 불길에서 구원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죄를 범하며 불길에서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지옥에 내던지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가 남긴 말
·기도하는 것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은 몇 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해 줍니다.
·저는 성체 앞에서 물어 보았습니다. “여기 누가 계십니까” 대답이 들렸습니다. “하느님!”
·우리가 사랑하는 하느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으면 누구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겠습니까.

글 _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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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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