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들이 소용돌이 가득한 어두운 밤하늘을 뒤덮고 있다. 그 아래로 밀밭 풍경이 거칠게 전개된다. 목가적이어야 할 밀밭에선 풍요와 평화가 보이지 않는다. 밀밭이 아니라 이글거리는 화염이다. 혼돈 그 자체다. 게다가 정중앙에 보이는 목적지 불분명한 음산한 길은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이 그림을 그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890년 7월 27일 권총 자살을 시도, 그 후유증으로 이틀 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37살 천재의 아까운 죽음이었다. 이 그림만 봐도 고흐가 죽음 직전, 얼마나 큰 절망감 속에서 방황했는지를 알 수 있다.
소심한 성격이었던 그는 수줍음을 잘 타고 겁이 많았다. 게다가 잦은 질병과 경제적 좌절감으로 평생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지냈다. 그래서인지 갑작스레 폭력성을 드러내는가 하면 심한 신경쇠약과 조울증, 심지어는 환각 증세까지 보였다. 이처럼 고흐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에게 미술은 탈출구였다. 거대한 고통 속에서 거대한 자연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해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림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다.” “의도된 비사실적 그림이 오히려 사실적 그림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능력 또한 내면에 품고 있다. 유일무이한 한 인간이 유일무이하게 구현해내는 삶은 창조 그 자체다.
그런데 하느님의 창조와 달리 인간의 창조에는 고통이 따른다. 피조물이 가질 수밖에 없는 유한성 때문이다.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도 그 삶이 창조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고통의 한가운데서 창조의 신비를 내포한 인간의 심오한 내면적 격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격동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고통을 수반하는 창조의 강을 건너 지복직관(至福直觀, Visio beatifica)의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목적지 불분명한, 음산하고 섬뜩한 길에 빛이 비춰지도록 해야 한다.
창조적 인간이었던 고흐는 불확실한 미래와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 앞에서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그렇다면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