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저는 늘 배가 부르면서도
아사감방에 갇혀 있습니다
방금 벌컥벌컥 생수 한 병을 다 들이켜놓고도
타는 갈증의 감방에 쓰러져 있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두 발을 준 까닭은
서로 함께 걸어가라고 준 것이나
저는 그 누구하고도 함께 걸어가지 못하고
홀로 걷다가 홀로 떠나갑니다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사람 대신
스스로 아사감방으로 걸어들어가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돌아가신
내 진리의 고향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San Massimiliano Maria Kolbe. St. 1894~1941) :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 신부이다. 원죄 없으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깊었으며, 성모 기사회를 만들었다. 그는 고향에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는데, 한 기혼자가 사형당할 처지가 되자, 스스로 나서 대신 형벌을 받고 선종했다. 기념일은 8월 14일이다.
정호승 (시인, 프란치스코)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 「연인」,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