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목계반점 (5)
찬바람이 몹시 불던 추운 어느 겨울날 구룡동 노인회관에서 음식 주문이 들어왔다.
회관 대청소를 하시곤 고생들 하셨으니 나름 회식인 셈이셨다. 벌써 상을 펴 놓으시고 나란히 앉으셔서 기다리고 계신다. 들어설 때 일제히 바라보는 시선이 사뭇 정겹다.
동시에 말씀이 터져 나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제비네 가족 같다. 먹이 물어다 주는 새가 된 기분이다. 맛있게 해왔냐! 불지 않게 해 왔냐! 서비스로 만두는 가져왔냐! 추운데 가져다 줘서 고맙다. 애썼다! 등등 자식이 들어선냥 한마디씩 내어 놓으신다. 그날도 그렇게 인사 나눈 뒤 음식 내려놓고 일어서려는데 할머니 한 분이 자신의 몫으로 배당된 짜장 한 그릇을 들고 나오시더니 저 건너 큰길까지만 태워달라고 하시길래,
“할머니 이거 불고 식어서 못 드셔요. 여기서 그냥 드시고 가시지 어딜 가져 가시게요?”
“우리 집 영감이 다리가 아파서 못 댕겨. 이거 가져가서 같이 먹을려구….”
“네…?”
이곳 회관까지도 꽤나 먼 거리였는데 여기서 또 어디로 가져 가신다는 게 과연 먹을 수 있으려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극구 괜찮다는 말씀에 아무 말 없이 그냥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큰 길가에 다다르니 어느 지점에서 내려달라 하시기에 집이 어디냐고 여쭈니,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에 조그만 집 하나가 보였다. 차가 들어가기엔 다소 좁았고 배달이 밀려있던 터라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이 80세를 넘긴 꼬부랑 할머니는 고맙다고 인사를 남기고 내리시는데, 짜장을 손에 들고 있는 탓인지 차 문도 제대로 못 닫고 내리셨다. 반쯤 닫힌 문을 다시 닫으려고 내렸는데 순간 찬바람이 휘몰아쳐 온몸을 감싸고는 내뺐다.
찬바람에 놀랐을까 할머니도 고부라진 등을 더욱 웅크리며 걸음을 재촉하고 계셨다. 누구에게나 흔한 짜장 한 그릇을 빼앗겨서는 안 될 귀중품처럼 안고서 말이다.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콧등이 시큰거린다.
내 검은 머릿결도 언젠가는 푸석해지고, 살결 또한 늘어지며, 걷지도 못할 때 나에게도 누군가 추운 길 달려와 입에 국수 한 가락 넣어 줄 사람 있으면 행복하겠단 생각이 들때었다. 누군가의 입에 나도 그렇게 기꺼이 넣어줄 수 있음에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도 행복일 거 같았다.
나는 이솝우화를 좋아한다. 삶의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감정이 앞서서 본론은 제껴두고 배가 산으로 가서 토론하고 서로 눌러 보겠다고 우격다짐하는 모습을 볼 때면, 바람과 해가 나그네의 웃옷 벗기기 내기를 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강하면 이길 것 같지만, 내기에서 이기는 건 언제나 따뜻함이었다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자식 일이든 배우자든 친구 든 마음에 안 드는 모습에서 우리는 기다려주고 배려하는 일에 얼마나 인색한가!
할머니가 차가운 길을 걸어 할아버지에게 가져다준 건 음식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 사랑 덩어리가 내 마음에 턱 하니 자리해선 먹먹하게 한다. 시내에 나갈 일 있으면 나도 옆지기가 좋아하는 순대 한 봉지 사선, 품에 안고 와야겠다. 그 할머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