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과 표현을 오늘날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며 살고는 있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평화’라는 단어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평화’를 의미하는 표현들로 샬롬, 팍스(Pax), 피스(Peace) 등이 있습니다.
샬롬은 히브리어이고 팍스는 라틴어, 피스는 영어입니다. 샬롬은 하나됨, 조화, 상대에 대한 인정 및 존중과 같은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하느님이나 이웃과의 관계에서 모든 계약 조건을 다 이행했을 때에 주어지는 평화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최고선이나 공동선의 충족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팍스는 강력한 제국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힘에 의한 평화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한번쯤은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즉, 로마 제국 지배하의 평화로 정치적·군사적 힘에 의한 지배를 표현합니다.
피스는 이러한 라틴어 팍스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영어 단어 속의 평화는 은연중 정치적·군사적 힘에 의한 평화를 포함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신자들이 평화를 원래의 의미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오류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시로 샬롬으로서의 평화를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우리가 미사 전례 중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입에서 내뱉게 되는 ‘평화를 빕니다’의 평화는 과연 어떤 평화일까요? 샬롬일까요? 팍스일까요? 아니면 피스일까요? 설마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내가 당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으니 앞으로는 내 말을 따라야 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죠. 분명 우리 역시 샬롬으로서의 평화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샬롬으로서의 평화는 개인 간에만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의 인식 속에는 어느덧 개인 간에는 샬롬, 국가 간에는 팍스와 피스로서의 평화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일 중동지역에서 무수한 살육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처참하고 참담하기까지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샬롬으로서의 평화는 현실에서는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개인 간에만 통용되는 것일까요? 요즘처럼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가 가슴 깊이 아려오는 때는 없던 것 같습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