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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노란 화살표(flecha amarilla), 생명과 인연의 표시(정운필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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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표시 말고도 주변에 노란색 화살표가 많이 있다.
포르투갈길에는 반대 방향으로 난 파란 화살표시가 있다. 어느 곳에 Fatima라고 씌여있느 것을 보니, 파티마로 향하는 도보길인가보다. 정운필 신부 제공


모든 산티아고길에는 표지석이나 안내표시 말고도 인쇄되지 않은 노란색 화살 표시가 있다. 이는 ‘생명의 표시’다. 누가 십계명을 “행복에 이르는 가이드 라인”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산티아고길 노란 화살표는 곳곳에 있는데, 화살표를 찾지 못해 심하게 헤매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생명이라고 절감한다.

출발부터 잘못 본 화살표에 반대로 갔지만, 화살표가 보이지 않을 때는 몹시 불안하다. 올바로 가고 있는지 이 화살표가 알려주는 것이다. 가끔 표시가 오래되어 흐리거나 길섶 풀숲에 가려져 있으면 지나칠 때가 있다. 셋째 날, 어둠 속 출발 후 묵주를 돌리며 한참을 가도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갈림길이나 이상한 길도 딱히 없었는데, 기도에 아무 생각 없었나 보다. 그럴 때는 더 가지 말고 그곳에서 여기저기 우왕좌왕하며 화살표를 찾아야 한다. 최후 수단으로 웹 지도를 확인했지만, 더러는 깊은 산 속에서 소용이 없다.

많이도 잘못 왔다. 급격하게 꺾이는 길 한 귀퉁이 나무 밑에 표지목이 있었다. 특히 동트기 전에 출발하면 랜턴 빛에 노란색이 잘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갈림길이 나오면 여기저기 빛을 비춰 꼭 확인해야 한다. 의외로 엉뚱한 길이 많다. 그러면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 만나는 화살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화살표를 못 찾을 때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마을은 표시가 많이 있지만, 벌판이나 산을 갈 때는 화살표를 찾기 힘들다. 그럴 때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것인데, 불법 투기(?)한 휴지다. 이런 휴지와 심지어 진흙이나 흙탕길 발자국마저 화살표 노릇을 한다.

산티아고길에선 ‘쓰레기를 버릴 때는 잘 보이는 곳에 버려라’라는 불문율이 있다. 발자국도 아무 데나 남기면 안 되는 것이 혹여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계명이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계명이 삶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표지라기보다 족쇄로 여기기 때문이다.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 정확히 통치자들이 그랬다. 화살표처럼 계명을 곁에 항상 두는 것이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게 한다. 혹여 다른 사람의 비계명적 행위도 타산지석이라고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그러기 위해 일상에서 확실한 기준인 화살표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한다.

포르투갈길은 제법 화살표만큼은 잘 되어있다. 간격도 적당해 불안해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부주의가 그렇게 만든다. 포르투갈길에는 노란 화살표 말고도 반대 방향으로 파란색 화살표가 더 있다. 파티마로 가는 표시다. 추측하건대 스페인 지역에도 있는 것을 보니 산티아고에서 파티마까지 걷는 표시인가보다. 그 길로 가는 몇몇 사람을 목격하기도 했다.

 
성당이 있어도 마을 중간에 경당들이 많다. 여기서도 도장을 찍을 수 있다. 정운필 신부 제공


걸으면서 많은 마을을 지나고 많은 사람도 스친다. 이들은 순례자에 인사(주로 Buen Camino!)할 때도 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무표정이다. 오랜 시간 차량이 거의 없는 길을 운전하다 맞은 편 지나는 차를 보면서 ‘저 사람은 무슨 이유로 어디로 가길래 하필 이곳을 지나는 것일까?’, ‘왜 내가 지나는 바로 이 순간 지나가고 있는가?’ 자못 궁금할 때가 있다. 이런 생각에 대부분 인생무상을 떠올리지만, 그러면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도 뭔가 실낱같은 인연은 없을까 착각한다.

시골의 작은 마을을 지날 때 스친 이 노인은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나를 스치는가? 그의 인생 목적이 무엇이었기에 여기에 있는가?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나의 길이 바쁘다는, 언어와 습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나치면서 한편 속으로 주님의 축복을 빌기도 한다. 나름의 인생을 살아왔으리라. 상관없는 사람과 기억 못 할 시간에 스치는 것, 결코 우연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스치는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까지 나와 만났던 사람들, 앞으로 만날 이들은 얼마나 더 깊은 인연일까? 더욱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이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원상태가 되겠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더 큰 사랑으로 풍부해질 것이다. 이는 이 순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왔지만, 여기 사람들은 같은 곳을 향해 걷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쉽게 친해진다. 산티아고 포르투갈길에서 아무 상관 없는 사람으로 인해 깨닫는다. 내가 만나는 세상 사람은 모두 사랑해야 할 인연이라고….


 


정운필 신부 /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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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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