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영화제 대상 수상한 이종훈 감독
집은 한 사람의 인생과 닮아 있겠다 생각
삶의 기억·경험·감정 재료가 된 집 그려
마음 편안하게 하는 이야기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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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원하는 곳에 희망하는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어디에, 어떤 집을 빚어내고 싶은가.
의뢰인의 삶에서 재료를 수집해 의뢰인과 닮은 집을 짓는 건축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A. 지난 10월 26~29일 개최된 제10회 가톨릭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종훈 감독의 애니메이션 ‘건축가 A’의 주인공이다.
예의 있지만 어딘지 무기력해 보이는 A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건축을 포기한 채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미소를 한아름 머금은 한 할머니가 나타나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한다. 주저하던 건축가는 할머니의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 그녀의 지난날을 함께 돌아본다. 삶의 기쁨과 슬픔, 상처와 치유의 모든 순간이 집의 뼈대가 되고 재료가 되며, 궁극적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만의 집이 되기 때문이다. 늘 웃고 있지만 할머니에게도 집의 튼튼한 기둥이 될 큰 아픔이 있고, 개성을 드러낼 만한 즐거운 추억들이 있다. 그 희로애락의 긴 여정 끝에 할머니를 쏙 빼닮은 집이 완성되고, A는 오랫동안 미완성으로 방치했던 자신의 보금자리에도 다시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건넨다.
“‘건축가 A’는 저마다 품고 있는 마음속의 아픔을 담담히 마주하며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이죠.”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종훈(34) 감독은 건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며 웃었다.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를 거치며 심화 학습을 마친 그는 2013년부터 창작 스튜디오 VCRWORS(브이씨알웍스)에서 감독으로 활동하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청년 감독이다.
여느 때처럼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는 우연히 퇴근 시간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다들 서로 다른 목적지, 각자의 ‘집’으로 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이라는 공간은 몸은 물론이고 마음도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면서 개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공간이기도 하죠. 그 취향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은 사건·사고와 기억, 가치관으로 정립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결국 ‘집이 한 사람의 인생과 닮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했고요.”
삶의 숱한 기억과 경험, 감정과 사유가 재료가 되는 집. 그 신선한 발상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와 버무려져 더욱 싱그럽게 스크린을 채운다. 밝은 색채, 예쁜 이미지들, 무던해 보이는 건축가 A와 늘 웃고 있는 할머니 제제 등의 캐릭터는 인물들의 아픔과 상처를 관통하는 동안에도 살포시 미소 짓게 한다.
“주변에서 A의 외모가 저를 닮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지금까지 만난 할머니는 모두 귀여웠어요. 포근하고. 초월까지는 아니어도 아픔을 이겨내는 방식을 알고 있고요. 그래서 제제의 모습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또 제가 살아온 인생이 30여 년이라면 할머니의 인생 서사는 훨씬 길잖아요. 그래서 그 기억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꾸며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친 여행을 끝내고 쉬고 싶어 하는, 삶을 정리하려는 노년의 모습도 담았고요.”
극중 할머니 제제와 건축가 A의 마음이 통했듯 창작진의 메시지가 관객들에도 잘 전달됐는지 ‘건축가 A’는 제10회 가톨릭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앞서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 초청 및 출품됐고, 제27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캐나다, 2023)에서 곤 사토시 최우수단편작품 은상, 제26회 뉴욕국제어린이영화제(미국, 2023)에서 그랑프리 단편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품 내에 종교적인 장치가 전혀 없는데 가톨릭영화제에서 상을 받아서 많이 놀라고 무척 감사했어요. ‘함께 걷는 우리’라는 올해 영화제 주제와 맞았나봐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죠. 평소 그리움이나 이별의 아픔에 대한 작업을 해왔는데, 기본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거나 치유의 여유가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하지만 저희도 스튜디오를 꾸려가다 보면 다른 작업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이번 상은 저와 함께 작업한 동료들에게 다음을 그려낼 용기를 주었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