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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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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이고 어디서 오는 길이오?”(요나 1,8)

우리는 태어나면서 저마다 고유한 이름을 지니게 됩니다. 불리게 될 이름은 자신의 신원과 이름의 뜻이 지닌 깊은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이름은 그가 어느 집안의 사 
람이며, 이름을 지어주신 분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가톨릭’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톨릭Catholic은 ‘보편된’, ‘공번된’이란 뜻이며, 보편교회의 전통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가톨릭은 교회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고백하며 그분의 삶을 따르고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성경 말씀과 교회의 교리를 지키겠다는 이름인 것입니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은 이름에 걸맞게 ‘보편된’ 넓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편협되거나 이기적이거나, 끼리끼리의 문화에서 벗어나 모두를 포용하는 넓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름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같은 소중한 가톨릭의 이름을 살려고 했기에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는 그토록 참혹한 박해를 당했던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를 세우신 예수님께서는 당시 민족과 나라의 구분, 신분과 계급, 죄인과 의인, 남자와 여자, 아픈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하나로 사랑하며 보듬어 안으셨습니다. 이 가르침을 가톨릭 신자들이 철저히 살려고 애썼기 때문에 당대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그토록 처절한 박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톨릭 삶과 정신을 분명히 알고 철저히 지키려 했던 사도 바오로였기에 그는 엄연한 신분의 구분이 있던 냉엄한 시대에 다음과 같은 혁명적인 선언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7–28)

이것이 가톨릭 신자들의 신원이며, 이 보편되고 평등하며, 숭고한 신앙의 가치를 살아야 하는 사명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주어진 이름인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또 다른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 거룩히 성별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거룩히 성별된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의 온갖 물질적 유혹과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나 고귀한 품위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기에 대 레오 교황님(400~461)은 일찍이 이런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오, 그리스도인이여, 그대들의 고귀한 품위를 깨달으시오. 여러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명심하십시오.”
프라 안젤리코 - 성인들과 순교자들을 포함한 그리스도의 선구자들

우리는 분명 세상에 속하여 살지만 세상 악과는 단호히 구별되는 거룩한 삶으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받을 때 영혼의 이름인 세례명을 받게 됩니다. 세례명은 이름의 주인공인 성인 성녀의 삶을 본받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름이 주어진 것은 그 이름값을 하라는 뜻입니다.

세는 타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탈출 3,1–15 참조). 소년 사무엘은 실로의 하느님 성전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1사무 3,1–10 참조). 사도 바오로는 다마스쿠스로 달려가던 중,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사도 9,1–9).

이렇듯 성경에서, 주님께서 친히 이름을 부르시는 사람들은 또 다른 소명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었습니다. 이름은 진정 그 사람의 신원이자 소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하느님은 나의 이름을 매일 부르시면서 세상에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꽃이 되라 하십니다. 이제 요나는 바다에 떨어질 죽음을 앞두고 선원들이 묻는 물음에 답을 해야 합니다. 그 대답은 요나의 것이지만, 우리 모두의 신앙의 근원을 묻는 물음인 것입니다. 요나는 아주 분명히 대답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나는 바다와 물을 만드신 주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오.”(요나 1,9)
배광하 신부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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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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