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저에게 해주셨던 일들을 가끔 묵상할 때, 혹은 여러 가지 일들로 마음이 부산할 때 가끔씩 되뇌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제가 아주 미미하게 폐소공포증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저는 다음의 성경 구절을 매우 좋아합니다.
“넓은 곳으로 이끌어 내시어 나를 구하셨으니 내가 그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네.”(2사무 22,20; 시편 18,20)
위의 말씀은 성경에서 동일한 어휘로 사무엘기와 시편에서 각각 노래되고 있는 다윗의 승전가입니다. 성경의 표현처럼, 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넓은 곳으로 이끄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하느님의 부르심과 관계된 성경의 아름다운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르심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 여정을 이어 가시기에 부르심은 구원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을 선택하시어 부르시지만, 이 한 사람에 대한 부르심은 주변 이웃과 공동체를 향한 섭리와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한 사람에 대한 이 작은 부르심은 마치 중요한 하나의 사건처럼 묘사되며 특별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위의 시편이 노래하는 부르심의 특별한 장소는 넓은 곳입니다. ‘넓은 곳’이 주고 있는 일반적인 이해처럼 이 장소는 한적한 곳, 인적이 드문 곳입니다. 그러기에 이곳은 단 둘이 따로 만날 수 있는 장소이며, 일상의 분심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대화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고, 아픈 이를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치유하는 모습은 이러한 시편의 분위기와 닿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마태 20,17)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한 일을 예수님께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따로 데리고 벳사이다라는 고을로 물러가셨다.(루카 9,10)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마르 7,33)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를 한적한 곳으로 따로 부르시고 함께 머무셨으며 함께 걸으셨습니다. 특별히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는 장면에서 그를 따로 데리고 나가시는 모습은 부족함을 많이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들과 예수님의 만남에 대해 깊이 있는 묵상으로 이끌어 줍니다.
다윗의 승전가 시편 속에서 ‘넓은 곳’으로 사용된 히브리어 <???????>은 성경의 비유적 표현 안에서 자유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 단어의 어원 <?????>이 ‘넓게 만들다. 방을 만들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유념한다면, 하느님의 부르심 자체가 우리에게 커다란 자유이자, 또 다른 내면의 만남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사실, 자유를 찾아 떠났던 이스라엘 공동체는 한적하고 인적 드문 곳에서 하느님을 깊이 있게 만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유일하신 하느님과 만났고, 하느님께서 건네주신 말씀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체험하였습니다. 이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하느님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확신하였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느님은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주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약속을 합니다.(계약체결, 탈출 24,3-8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하느님과의 만남이 너무도 소중하여 하느님께서 머무실 작은 방(만남의 천막) 하나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러한 만남이 이루어진 곳은 바로 시나이산입니다. 시나이산은 넓은 곳이자 한적한 곳이었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따로 데리고 나가시어’ 만난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산의 이 소중한 만남을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영원토록 기억하고 되새깁니다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