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Joseph Hitch cock, 1899~1980) 감독이 1940년에 연출한 영화 ‘레베카’(Rebecca)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독특한 소재로 당시 평단의 주목을 끌었다. 영화는, 세상을 떠난 레베카가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3800~4000년 전, 이사악의 아내 이름도 레베카였다. 이사악의 아내 레베카는 이미 죽고 없지만, 마치 히치콕 감독의 영화 속 레베카처럼 오늘날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만약 그녀가 둘째 아들 야곱이 아닌, 첫째 에사우를 더 사랑했다면 지금의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 명백한 이사악은 아내 레베카를 통해 특별한 위로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머니 사라의 죽음 뒤에 이뤄진 혼인이어서, 아내에 대한 정이 더욱 각별했을 것이다.
이사악과 레베카, 또 그의 아들 야곱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창세기」 25장에 자세히 나온다.
마흔 살의 늦은 나이에 레베카와 혼인한 이사악은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다.(창세 24,67 참조)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20년이 지나 노인이 될 때까지 아이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사악은 아이를 얻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레베카가 임신을 했다. 그것도,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덜어 주기라도 하듯, 아들 둘(쌍둥이)이 한꺼번에 들어섰다.
레베카도 임신 초기, 직감으로 자신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쌍둥이임을 알았다. 그래서 하느님께 기도로 물었다.
“어째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까?” 주님께서 대답했다.
“너의 배 속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두 겨레가 네 몸에서 나와 갈라지리라. 한겨레가 다른 겨레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창세 25,22-23)
세상에 먼저 나온 이가 ‘에사우’이고, 둘째가 ‘야곱’이다. 참고로 에사우는 이슬람 민족의 조상이 된다. 유대인의 조상이 야곱이니까, 유대인과 아랍인은 애초에 쌍둥이 형제인 셈이다.
야곱은 영어 이름에서 제이콥(Jacob), 잭(Jack) 혹은 재키(Jake) 등으로 변형된다. 요한이 존(John), 베드로가 피터(Peter), 바오로가 폴(Paul), 마리아가 메리(Mary), 안나가 앤(Anne)으로 변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자 이름과 관련, ‘야곱’에 대한 미국인들의 선호도는 요한(존)과 베드로(피터), 바오로(폴)에 비해 크게 앞선다. 미국의 한 단체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에서 남자아이 이름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이름이 야곱(Jacob)이었다.
야곱은 ‘다른 사람의 뒤꿈치를 잡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태어날 때 형 에사우의 뒤꿈치를 잡고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야곱은 ‘남의 자리를 뺏다, 기만하다’라는 뜻과 관련되기도 한다.(창세 27,36 참조) 반면 에사우는 ‘털복숭이’라는 뜻이다.
1990년에 케빈 코스트너(Kevin Michael Costner, 1955~)가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도 인디언들의 이름 중에 ‘주먹 쥐고 일어서’, ‘발로차는 새’ 등과 같은 재미있는 이름들이 나오는데,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사람의 특징을 따서 이름으로 불렀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늦게 본 아들과 딸의 이름을 ‘막둥이’ 또는 ‘말순이’라고 지었다.
어쨌든 비슷한 DNA를 가지고 태어난 쌍둥이 형제면 성격도 비슷할 법한데, 에사우와 야곱은 그렇지 않았다. 완전히 달랐다.
“아이들이 자라서, 에사우는 솜씨 좋은 사냥꾼 곧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온순한 사람으로 천막에서 살았다. 이사악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여 에사우를 사랑하였고, 레베카는 야곱을 사랑하였다.”(창세 25,27-28)